제주-함덕

2009.09.13 16: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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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에 들어서자 길이 바다와 가까워 길을 달리는 내 그림자가 자주 물에 젖었다. 
젖은 그림자가 물결 위에서 출렁였다.
먼 바다는 쪼개질 듯 푸른 색. 심연과 영원의 유혹을 닮은 색이었다. 


유혹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인 바다가 그 해안을 따라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내 자전거는 그 경계를 위태롭게 흔들리며 달렸다.
아름다움에 눈이 이끌려 몸이 느슨해질 때 자전거가 길을 넘어 바다에 빠질 듯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너무 먼 곳에 시선을 둔 탓. 
바다의 흡입에 저항하지 않은 채 몸을 그냥 내어 맡긴 탓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급히 핸들을 돌린 뒤 숨을 몰아 내쉬었다.

함덕에서 김녕까지 자주 위태로웠다.
좀 쉬어야 했다. 
아침부터 달렸고 아름다운 것들도 너무 많아 그 아름다움으로 피곤했다. 
자전거를 바다와 도로의 경계석 위에 세웠다. 

마실 수 있을 듯한 바다. 감귤나무 잎을 닮은 바람. 저 흙과 숭숭한 돌. 휘청이는 가을 꽃들. 
거기 그냥 존재하는 것의 이름을 차례로 나열하기만 하여도 시가 될 듯한 풍경.
오전 11시.
이마의 땀을 바람에게 건내주며 앉아 있는 한 남자.

모든 것은 여기 오래 더 존재할 것이고 그러나 나와 자전거는 곧 떠나게 될 것.
우리는 왔다 가는 것.

갑자기 존재의 필연인 사라짐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우리는 왔다 가는 것. 그것은 잠시.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 몇만년 전부터 있었고 그리고 먼 훗날까지 존재로 남겨질 듯한 묘한 영속의 기분도 함께 느꼈다. 
생과 생 사이의 긴 시간이 한줌 재 처럼 사라지고 몇 만년 뒤 내가 다시 이곳을 찾아 왔을 때
바다도 여기 그대로, 바람과 흔들리는 풀도 그대로
그리고 저 자전거도 그냥 있어서 잠시 몸을 쉰 내가 다시 그림자를 적시며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때에도 이곳에 몸이 원액에 젖은 존재가 셋 있을 것.

하나는 바다에서 건져와 이마까지 축축한 내 그림자.
또 하나는 잎을 숨긴 채 산쪽에서 내려오는 젖은 바람.

그리고 치마 끝이 오래 젖은 팔월의 제주.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아침을 거른 채 휘청이며 경계를 오래 달려왔기 때문일 것, 바다를 오래 바라 본 자가 갖게 되는 증상일 것이다.
아니면 조금 전 휘청일 때 내 몸을 가져가는데 실패한 바다가 몸을 대신하여 마음을 일부 떼어가 버렸기 때문.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을 때
다시 내 이마에 와 앉는 바람의 혀.

그리고 그 사이 한번의 숨인 듯 지나가버린 몇 만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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