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기사에게 지도의 한 곳을 짚어 보여주고 닿은 곳은 도심 외곽의 야외 시장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다. 고가 도로 아래 초라한 행색의 몇명이 노상에 앉아 과일과 아채,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금속 농기구들을 팔고 있을 뿐이었다. 상인과 손님을 합해도 스무명 남짓에 불과했다. 지도가 과장되어 있었구나 생각했다.
도시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으므로 어느 정도는 지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의 여행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 피곤함을 씻어 내기도 전에 다시 지도부터 펼치곤 했다. 내일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하는 것.
지도 속에서 수많은 기호와 등고선으로 축소되어 있는 평면의 모습을 보고 실재의 거리를 짐작했다. 강과 인접하여 도로와 건물이 표시되어 있으면 그 사이로 한적하게 걷는 사람들과 생선이 뛰는 좌판을 상상하고, 면적으로만 표시된 공원에선 거기 담겨있을 온갖 식물들과 벤치 위에 길게 누운 평온함까지 함께 떠올리는 식이었다.
그리고는 고심 끝에 볼펜으로 동그랗게 표시하여 내일의 목적지를 최종 낙점하곤 했다.
내 여행은 늘 그랬다.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풍경과 명소를 찾아가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해 되도록 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화려한 볼거리 등으로 늘 풍성했지만 결정적으로 그곳엔 '사람'이 없었다. 관광객들 뿐이었다.
자신의 어깨위에 한마리 나비가 날아와 앉은 것도 모른채 사진 촬영에만 바쁘다가 목표량을 채우면 가차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사람들. 그들과 섞이기 싫었다. 뺨 때리 듯 쉴새 없이 찰칵 거리는 그 채집과 증거보존의 셔터음들이 나는 싫었다.
그래서 지도에 의존했다.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현지의 사람들이 그저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곳을 찾고 싶었다. 지도를 짚어 찾아간 낯선 곳들. 우연으로 만나는 이름없는 골목들. 높고 휘왕한 건물과 풍경은 없었지만 그곳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그곳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었으므로 사람과 만나고 싶었다.
지도에서 그 시장은 근처 학교의 운동장 보다 넓은 영역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앞에 두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뒤에 분명히 시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근처에 작은 강도 흐르고 있었다.
물이 흐르고 그 옆에 늘어선 사람들이 흥정으로 붐비는 시장을 상상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별 망설임 없이 다음 목적지로 정했다. 지도를 믿었던 것이다.
시장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당나귀가 끌고가는 수레가 천천히 움직여 도로를 정체시켰다. 수박을 가득 싣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움직였다. 정체 속에 갇혀 있던 택시 기사는 기회를 잡자마자 거칠게 핸들을 꺾고 속도를 높여 수레를 추월해갔다. 지나가며 그 당나귀에게 한마디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성이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친절한 당나귀씨...이런 뜻이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그 택시가 당나귀를 추월하여 지날 때 풍선을 들고 가는 남자를 보았다. 옆길 없이 긴 직선도로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손에 든 풍선과 햇살에 닿은 그의 얼굴이 비교되며 쓸쓸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고개돌려 점처럼 작아지는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 알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고 할까.
시장의 규모에 실망한 나는 조금 전 택시에서 보았던 풍선을 든 남자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 남자의 목적지 역시 이 작은 시장일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도 쓸쓸한 것들은 쓸쓸한 것끼리 서로 모이고 화려한 것들도 서로 모이려는 묘한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장의 풍경은 그 남자와 어울리도록 쓸쓸해보였다.
길에 앉아 기다렸다. 오래도록 그는 오지 않았다. 거리로 짐작해서는 벌써 지나쳐야 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곳으로 간 것이라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시장이나 한바퀴 둘러보고 떠나야겠다 생각하고 일어섰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다음 목적지에서였다. 근처의 사찰이었다. 시장에 실망한 뒤 지도를 펴보니 거기서 서쪽 방향으로 큰 절이 하나 표시되어 있었다. 걸어서 삼십 분 정도의 거리였다. 다음 목적지로 정한 뒤 해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큰 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었다. 안내표지에 사찰을 가르키는 화살표를 보고 골목을 하나 꺾었을 때 저 앞에 무언가 한송이 꽃처럼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그 남자였다. 풍선 속에 노랗고 붉은 빛을 팽팽히 채우고 그가 걸어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반가웠을까. 조금씩 걷는 속도를 높여 그와 가까워졌다. 그리고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 계속 걸었다.
그가 어딘가 화려한 축제의 장소에 닿아 풍선을 건네주길 마음 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한 바램이 있었다. 그 쓸쓸한 걸음을 끝내고 결국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사람들을 만나 기쁨에 기쁨을 더하는 광경을 나는 보고 싶었다.
그것은 그 남자에 대한 응원이기도 했지만 내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 남자가 화려한 것에 닿으면 내 여행도 같이 조금 환해질 것만 같은 이상한 착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디로 걸어 갔는지 결국 확인할 수 없었다. 얼굴에 가득 웃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풍선을 건낼 수 있었는지 아니면 쓸쓸함의 송곳 같은 것으로 그 풍선을 모두 터뜨리고 혼자 울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너무 천천히 걸었고 어둠은 서둘러 왔다. 날이 모두 어두워졌고 내게 그곳은 너무 낯선 장소였다. 더는 뒤따라 갈 수가 없었다.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그들 남기고 숙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되돌아 오며 생각했다. 그는 어디에 닿았을까. 결국 나의 바램처럼 축제의 장소에 닿을 수 있었을까. 다시 지도를 펼치고 그 남자가 걸었던 곳 위에 적었다.
'한 남자가 희망처럼 풍선을 들고 걸어간 곳'
그리고 그 남자가 계속 해서 걸어 간 방향을 지도에서 살폈다. 축제가 있을 법한 풍경을 찾아보았다. 그곳은 모두 인가(人家) 뿐이었다. 건물의 규모가 적은 촌읍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나는 그 다음 날의 목적지로 그 곳을 택했다. 그리고 볼펜을 들어 지도 위에 동그랗게 표시해두었다.
그 둥근 표시가 마치 풍선처럼 보였다.
[사진-중국 운남성]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