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과 광주. 둥근 언덕과 평야의 지형 속에 손 넣듯 흘러온 강은 영산포에 들러 처음으로 몸을 잠시 쉬게 된다. 그물에 걸린 듯 강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 그 속에 두툼한 지갑처럼 물고기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고려말 왜구의 침략을 피해 강을 거슬러온 섬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살면서 동네가 시작 된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그 이후 소금과 곡식, 흑산도에서 올라오는 홍어, 멸치젓 등이 사람 따라 붐비며 영산포는 천년 이상 호남지역 해상 운송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내가 영산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나해철의 詩에서 였다. 그의 등단작이기도 한 <영산포(榮山浦)1> 은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로 시작하여 시를 읽는 어린 내 마음도 함께 울리곤 했다.
어떤 곳일까. 버스에서 내리면 지금도 멸치젓 향내가 달궈진 바람 속에 밀려오고 저 멀리 고기잡이 배들이 순서를 다투며 붐비고 있을까, 나는 생각 했었다.
물론 내가 처음 그 시를 읽었던 때, 그러니까 20여년 전 부터 이미 영산포는 쇠락의 촌읍일 뿐이었다. 60년대 이후 상류에 댐들이 들어서며 뱃길이 끊겼고 육지를 통한 교통이 점차 활발해지면서 강과 강물의 중심지였던 영산포는 자연스럽게 옛 정취의 작은 읍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달디단 멸치 향내 속을 걷다 이발관에서 신사로 거듭나던 청년들은 이제 노인이 되었거나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남평이발관은 남아 있다. 문은 열어두고, 그러나 어차피 손님이 없을 것을 예상했는지 주인은 자리를 비웠다. 열려진 창문으로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낡은 의자와 도구들 위로 각종 기능 대회 수상 액자와 요금표, 그리고 멋진 중년 남자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누구일까, 궁금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이내 폭우로 변했다가 다시 가늘어졌다. 되도록 좁은 골목길로 다녀보자 했다. 사람들만 다니는 길을 걷고 싶었다. 그 길을 딛으며 먼저 지나간 사람들을 짐작해보는 일. 그러나 쇠락의 증거라도 되는 듯 좁은 길들은 허물어지고 기울어져 있었다. 사람이 걷던 바로 길 쪽으로, 길은 허물어지는 중이었다.
참기름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어떤 연결성을 갖는가. 타인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그곳에서 이십 년 넘게 희망을 담아 내는 늙은 주인은 알 것이다. 희망 참기름집. 허물어지는 영산포 속에 어울리며, 그 쇠락 속에서 오히려 영산포의 명물이 되어 버린 곳.
어디서 듣고 오는지, 관광객과 사진가들이 너무 많이 와서 귀찮다 하면서도, 주인 내외는 내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열고 눈구경하고 돌아가지만 그 중에 더러는 옛날식 둥근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을, 마치 기념품처럼 사서 간다고 말했다.
생각해보았다. 희망참기름은, 따뜻한 밥 속에 스미며, 참기름의 그 실질적 효용으로도 좋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저 관광의 기념으로 장식된 채, 어떤 원목 테이블 위에 오래 가만히 얹혀 있어도 좋을 것이다.
참기름은 그 어디에서나 상관 없이, 그 고소한 희망의 향을 조용히 풍겨내고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한 아주머니가 우산을 쓰고 길을 내려가면서 내 눈을 끌었다. 붉은 신발이었다. 검은색 우산과 바지. 그리고 붉은색 웃옷과 신발.
비가 내려, 젖은 채 선명했던 길의 색과 사람의 옷이 어울려, 풍경으로 잠시 드러났다가 이내 저 아랫쪽 골목으로 사라져가버렸다. 그 색들을 잊지 않으려고 카메라를 꺼내 서둘러 한컷 담고, 나도 그 풍경 속에 조용히 스며 들어갔다.
오늘 저녁 누군가는 쑥떡을 맛있게 먹게 될 것이다. 떡집 주인과 손님이 함께 쑥을 다듬고 있었다. 불쑥 찾아들어가 사진을 찍는 나를 본체만체 했다. 손님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손님이 아니라...여행객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삶에서도 손님이 아니라 여행객 행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태도가 그렇다는 말. 치열하지 못하고 그저 풍광을 살피듯 생의 골목길을 슬슬 거닐 뿐이다. 그래서인가. 이 생은 자꾸만 나를 그냥 내버려두는 느낌.
바로 그 느낌으로 말없이 서서, 쑥떡이 익어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왜 나는 낡고 오래된 것들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일까. 폐허는 아름답고 고층 빌딩은 폭력이라고 이분하여 생각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해석하려고 하지 말자. 나는 그냥 그렇다.
다시 희망참기름에 들러, 나는 그러한 나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내 눈에는 다 같아보이지만 분명히 각각의 용도가 있을 것이다. 오랜 경험을 쌓을 수록 도구의 기능을 통합하거나 세분하게 되는 것이다.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선배의 작업실에 들렀다가 펼쳐진 도구에 기가 질렸던 적이 있다. 백여 개가 넘었다. 내 눈엔 다 같아 보였지만 모두 용도가 다르다는 설명이었다. 통영의 대장간에 갔을 때는 반대였다. 하나의 망치로 모든 종류의 쇠를 다 두드리고 있었다. 내려치는 각도와 힘의 조절을 통해 단순화된 도구의 한계를 극복해내고 있었다.
물론 통합과 세분이 숙련도 차이를 보여주는 척도는 아니다. 도구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모르는 자들은 도구에 집착하게 되고, 바보처럼 도구부터 보게 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희망 참기름 집 아저씨가 타는 자전거다. 오늘은 비가오니 쉬는 날이다. 일도 쉬고, 마실도 쉰다. 비가 대신하고 있으니 사람은 쉬는 것이라 하셨다.
포장마차와 매표소 대기실에 있던 의자와 같다.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선 아름답지 않았고 희망참기름 집 안에서는 너무 아름다워서 눈길을 끌었다. 어디 있느냐도 중요하다. 사람도 그렇다. 어디있느냐 그것도 중요하다. 의지를 가지고 자신과 어울리는 그곳에 가는 것.
할 일 없으면 동전이나 바꿔오라고 시킨 것은 주인 아저씨다. 쓸 데 없는 사진 같은 거 그만 찍고 너도 한판 껴서 치고 가라고 말한 것은 할머니다. 나는 동전도 바꿔오지 않았고 패를 받지도 않은 채 사진만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바보짓이었다.
처음에 방에 들었을 땐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만 화투를 치고 계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을 아주머니 두분이 더 오셨다. 어떻게 알고 오셨나고 물으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셨다.
아직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

인생의 패도 마찬가지다. 선택해서 받을 수가 없다. 이미 받은 것을 어떤 순서로 내어놓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생의 중요도를 잘 알고 그것의 순서를 지키는 일. 좋지 않은 패를 갖고서도 이길 수 있다.
무엇을 먼저 버리고 무엇을 끝까지 가져갈 것인가, 생은 그것이다.
할머니도 오래 고민하셨다.
나는 아직 패를 받지도 못한 청년인 것만 같았다.

사진이 시들해진 뒤로는 거의 찾아가질 못했는데, 한때는 영산포를 마음의 고향처럼 여겼어요.
가끔 후배들을 통해 전해듣는 그곳의 소식은 여전히 진행형중이지만,
영산포의 매듭은 빨간 대문에서 멈춰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