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와 전라도의 앞글자를 따서 '경전선'이라고 부른다. 밀양에서 광주까지 삼백킬로미터. 일곱시간이 넘도록 걷듯이 천천히 운행한다. 고속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가는 것보다 곱절의 시간이 더 소요되는 셈이다.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과 이제 더이상 멈추지 않는 폐역들을 스쳐지나 유난히 구불구불 곡선을 그리며 달린다. 창밖으로 너른들과 인가의 지붕들을 자주 보여주다가 섬진강을 지나면 경상도, 다시 그 강을 되건너오면 전라도가 된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을 이용해보면 그곳엔 유난히 노인들이 많다. 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여 무엇인가를 더 생산하거나 남기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젊은 날의 사유 방식이다.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인생인 것이라고, 노인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경전선을 타고 부산에 가면서 내내 그 목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것이 있다. 빠르게 가서 닿으면 그 이동경로는 그저 목적지로 옮겨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지만 천천히 오래 가는 길은 그 길 자체가 이미 여행의 한 부분이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세 시간에 닿으면 그것은 부산에 가기 위해 그저 소비되는 시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일곱 시간이 걸리게되면 이미 그것 자체로 하나의 의미가 되고 여행이 되는 것이다.
느리게 가서 닿을 수록 길은 더 큰 의미로 오게된다.
자주 부산에 갔었지만 가는 길 자체가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경전선의 체험이 유일하다. 시간의 효율성이 한없이 낮은 방법일 때 오히려 생과 여행, 추억의 효율은 높아졌다고 할까.
그리고 자주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느리고 오래 가는 길에서는...자연스럽게 대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것은 타인과의 대화일 때도 있었고 나 자신을 향한 독백일 때도 있었다.
고속의 열차로 빠르게 닿는 길이었다면 내가 나 자신과 옆자리의 타인들에게 말 걸 수 있었을까.
속도의 경쟁 속에는 틈이 없고 대상을 향한 마음의 문은 비교적 천천히 열리게 된다.
나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그 빠르고 짧은 시간을 휴대폰 액정처럼 무표정하게 보냈을 것이라 짐작한다.

느리고 구부러진 철로 위를 천천히 흘러가는 기차.
경전선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슴 속에 남겨두기로 한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저 한 인간이 지나온 긴 여정에 대한 덤덤한 회고들이었다. 특별한 내용이 없어 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다.
경전선도 그러하다. 느리게 가면서 길과 닿는 밀도를 높여준다는 것 이외에 특별함은 없다.
그것이 경전선의 아름다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