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촌들은 모두 청량리로 떠났다. 그곳에서 하역의 잡부로 일하거나 마장동에서 동물의 뼈를 옮기며 약한 생계를 간신히 이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오래 살았다. 휘경동, 신이문...

서울에 갈 때마다 자주 삼촌 집에 묵었다. 삼촌은 2교대를 끝내고 새벽에 들어와 오래 누웠다가 일어나곤 했다.
밤과 새벽 사이, 배추와 과일들이 삼촌의 어깨를 지나 각각의 도매창고로 옮겨졌을 것이다.
집에 있는 물건 좀 가져다 달라는 전화를 받고 처음으로 청과시장에 갔었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규모가 컸고 사람들이 분주해서 놀랐다. 마치 그 시장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며 공장과 같았다고 할까. 일렬로 늘어선 트럭들에서 쉼 없이 배추가 내려졌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흥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도매와 소매의 목적들이 섞여 혼잡했다.
일이 곧 끝나니 잠깐 기다리라며 삼촌은 나를 하역인부들이 모여 쉬는 방으로 데려 갔다.
그 방에 구부린 채 누워 쉬는 인부들이 몇 명 있었다. 한 번의 하역이 끝나고 다음 하역까지 대기하는 공간이었다. 그들 곁에 앉거나 눕기 죄송스러워 선 채로 차를 마시고 방을 나섰다. 삼촌이 다시 오기까지 계단에 혼자 앉았다.
노랗게 새로 칠한 계단이었다.
늙은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트럭 아래 빈 공간을 오가며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마치 지폐라도 줍는 듯 보였다. 손으로 집어올린 그것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다시 버리거나 어깨에 맨 포대에 넣었다. 무엇을 저렇게 줍고 있을까.
계단에 앉아서 내내 궁금했었다.
그것은 배춧잎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잎들 중 성한 것을 골라 담고 있었다. 삼촌에게 물으니 그것을 팔아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몇 된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다짐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그 모습을 다시 본다면 그것은 거룩히 보일 것.
생을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은 거룩한 일. 그리고 버려진 배춧잎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다시 회귀 시키는 아름다움.
청량리 청과물 시장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그 말. 생계. 그리고 배춧잎.

이제 고층 아파트와 최첨단 실버타운 건설을 위해 헐리게 될 그곳. 청량리 청과물 도매 시장. 또는 동부청과시장.
오늘 다시 기억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