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렸습니다.
1호선 주안역이었습니다.
심호흡하듯 열린 문으로 봄빛만 스며왔을 뿐입니다.
새로운 승객은 없었습니다.
바닥에 닿은 빛이 따뜻해보여 가방에 좀 넣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
어디선가 무당벌레 한마리가 객실로 날아들어 왔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지하철은 문을 닫고 출발했습니다.
잠깐 허공에서 맴돌던 무당벌레는 곧 건너 편 빈 좌석으로 내려와 앉았습니다.
사람처럼 앉는다 생각했습니다.
졸고 있는 뿔테 안경의 사무원 옆
금속 의자 위에서 무당벌레의 둥근 등이 반짝였습니다.
제게 그것은 날개를 가지고 날아 온 씨앗처럼 보였습니다.
엄마 옆에 앉아 소풍 이야기를 하던 아이가 일어나 그 무당벌레 곁으로 다가 갔습니다.
아이의 종아리에 만화가 그려진 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네 이름은 무당벌레, 나는 알고 있어"
인사하듯, 정말 만화처럼 아이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 낯선 상황이 재밌고 신기해서 심장이 약간 더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습니다.
그냥 옆반 친구를 학교 앞 골목에서 만났을 때처럼 편한 표정이었습니다.
얼굴을 무당 벌레 가까이 가져간 아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너는 내 배꼽 근처에 있는 점을 닮았어"
그 말이 좋았는지 무당벌레가 몇걸음 아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는 손 들어 마중하듯 그 움직임을 허공에 그려줬습니다.
아이와 그 벌레는 그렇게 서로 놀았습니다.
빛과 지하철의 흔들림.
핸드폰의 액정에 몰입하거나 무표정한 어른들 사이에서.
두 정거장 뒤
무당벌레는 기별도 없이 문득 날아올라 다시 열린 문 밖 푸른 빛 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올때 그랬듯 갑작스런 일이었습니다.
그 역 근처에 꽃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모양입니다.
제물포 역이었습니다.
아이는 날아가는 무당벌레를 아쉬워 하지 않았습니다.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문밖을 한번 바라보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 다시 제 자리에 되돌아가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아까 멈췄던 소풍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변한 것 없는 두 정거장이었습니다.
무당벌레는 날아왔다가 다시 날아가고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고
지하철 안쪽은 창밖의 빛들로 여전히 출렁이며 환했습니다.
다만 내 마음에 무당벌레의 등처럼 붉고 노란 무늬들이 그려지듯 생겨났을 뿐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몸 위에 그려 넣은 붉고 노란 꽃잎들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였는지
당신을 그리워하며 울던 내 마음의 눈물이 그때 비로소 그쳤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