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다는 것이 이미 축복

2009.09.16 1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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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고양이 사진만 찍으세요?"

 

사람들이 가끔 물어온다. 나는 싱겁게 대답하곤 하지만 가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돌려보기도 한다.

 

나는 왜 이렇게 고양이 사진만을 고집해 찍었을까?

어린 고양이를 키웠던 적이 있다. 나도 어렸을 때의 일이다. 마루 안쪽에 있는 기둥에 끈을 묶고 그 끈을 고양이 목에 걸어 키웠다.

끈을 묶었던 건 혹시나 어린 고양이가 마당으로 내려섰다가 짐승들에 다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린 내가 생각할 때 그 끈의 길이가 너무 짧은 것만 같았다. 겨우 1미터 정도의 길이였다.

얼마나 불편할까. 나는 끈을 마루 끝에 닿을 정도로 충분히 늘려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 내가 끈을 길게 해준 탓이었다. 마루 끝 부분까지 갈 수 있게 된 고양이가 마루와 바닥 사이로 미끄러져 목 매달 듯 죽어버린 것이다.

만져보니 고양이의 몸이 아직 따뜻했다.

나는 고양이를 살려보려고 애썼다. 심장 근처를 쓰다듬어주었고 뺨을 때려보았으며 다문 입 사이로 물을 흘려넣어보기도 했었다.

소용 없었다.  
 
나는 자라서 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번번히 아프게 헤어졌다. 그 끝은 늘 괴로웠다.

설득하면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은 때도 있었다. 아직 사랑의 체온이 다 식지 않았으니 가서 애쓰면 헤어짐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자 앞에 무릎 꿇어 빌고 편지를 보내고 골목 근처에서 서성였다. 

소용 없는 일이었다.   

고양이의 죽음처럼 사랑의 실패도 모두 나의 잘못에 기인된 것은 아닐까 자책했던 때가 있었다. 고양이에게 좀더 넓은 영역을 주기 위해 끈을 늘렸다가 죽게하고

사랑하는 중에도 그 사랑이 끝난 뒤를 필요 없이 먼저 두려워하다가 오히려 그 사랑을 빨리 실패하게 만든 것.

 

그 고양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내 발등에 와서 얼굴을 부벼대던 순간과 잠들 때 조용히 속으로 그르렁 거리던 소리. 아직 어려서 아프지 않던 그 발톱.  

사랑의 순간들도 생각해본다. 첫번 째 만남의 어색함과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서던 시간들. 그 골목길에서의 입맞춤. 같이 타던 자전거. 강을 바라보며 울던 그대.

 

나는 이제 나를 용서하기로 한다. 고양이의 죽음은 그 고양이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의 죽음보다, 살아 있을 때 그가 내 발등에 와서 몸 부비던 것을 더 오래 생각하기로 한다.

당신을 향해 모질었던 내 모습도 이제 용서하기로 한다. 나는 두려웠을 뿐이었다. 그대의 용서는 그대의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나를 용서해준다.

마음을 누르던 그 죄책은 버리고 그대와 내가 손 잡고 걷던 그 길과 당신 얼굴에 환한 웃음만을 더 오래 기억하기로 한다.

 

당신을 만난 것과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것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도 당신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한 뒤 모질게 아픈 쪽을 선택할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만남도 그렇게 선택할 것.

사랑 뒤의 아픔은 사랑이 없었던 것보다 언제나 더 기쁜 일이며 만남은 언제나 만나지 않은 것보다 축복이다.

더군다나 그 고양이는 부드러웠으며 당신은 내게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끔 그 고양이를 생각한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감나무 아래에서 흙과 섞였다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생을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도시를 걷다 문득 당신을 생각해본다. 그 생머리. 굽 높은 구두. 재잘거리던 웃음.  

당신 앞의 생을 생각해본다. 내게 받은 슬픔을 만회하듯 몇배로 더 기쁠 미래의 당신을 축복해 본다.

 

나와 연애로 만났던 사람들도 호명하며 생각해본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내 마음을 만질 수 없으므로 그냥 빈손을 서로 꼭 잡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선희는 어디로 갔을까. 수연, 경옥, 연숙, 혜원은.

생에서 나와 만나 잠시 사랑한 그대들.

 

내게로와서 나를 일깨워주고 내 마음을 쓸어준 그대들.

꽃과 같고 열매와 같고

잎 진 가지의 서늘함을 닮았던.

 

눈물겹게 고마웠던 내 생의 그대들.

 

그대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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