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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text">산문/에세이</title>
      <updated>2010-09-11T10:54:48+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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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머니의 파마(쓰는 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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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6-13T11:39:10+09:00</published>
      <updated>2010-06-15T19:42:25+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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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br  /&gt;&lt;/p&gt;
&lt;p&gt;봄에 잠깐 지방자치 선거를 도운 적이 있다. 약수역 뒤, 한낮의 상가들을 돌며 후보를 소개하고 인사 건내는 일이었다.&amp;nbsp;&lt;/p&gt;
&lt;p&gt;지하철 출구에서 골목 끝 인가로 이어진 상가는 모두 낡고 좁았다. 마당의 포도나무가 눈길을&amp;nbsp;끌던&amp;nbsp;화원을 시작으로 구식의 맞춤 양복점, 먼지 낀 창문의 전파사, 간단한 재료의 식당들이 언덕으로 이어져 있었다.&amp;nbsp;&lt;/p&gt;
&lt;p&gt;&lt;br  /&gt;&lt;/p&gt;
&lt;p&gt;그 골목길에 유난히 미장원이 많았다. 주인 혼자 운영하는 곳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amp;nbsp;거기 동네의 아주머니들이 머리에 파마 모자를 쓰고 앉아 계셨다.&amp;nbsp;&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쓰는 중/어머니, 젊은날, 파마, 이제 다시 긴머리, 그 사이에 어머니의 청춘, 구부러져있는 그 힘으로, 생의 길, 그 골목길로 다시 내려오며, 세상이 환했던 이유, 후보가 환히 웃고 있었다)&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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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title>
      <id>http://www.soulpenis.com/3803</id>
      <published>2010-05-20T18:03:37+09:00</published>
      <updated>2010-08-30T10:18:41+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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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일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 생각해보면 참 오랜동안 나는 그걸 하지 못했다. 어느 나무아래 계단, 남산도서관 작은 벤치, 광화문 뒷편, 강화도 어느 고인돌. 그런 곳에 앉아 있을 때 나는 가장 평온했으며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와서 지금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내일 외출할 때 입고 갈 옷, 다음 주에 읽어야할 책, 써야할 귀절 같은 것들. 그것들이 머릿속에 가볍게 떠올렸다가 일순간 저절로 사라지게 되고 이어서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는 상태에 잠시나마 머물게 되는 시간들.&lt;br  /&gt;&lt;br  /&gt;그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먼길을 걸어 앉아 있곤 하던 시절은 아름다웠다.&amp;nbsp;&amp;nbsp;아니 굳이 먼길로 가지 않아도 좋았다.&amp;nbsp;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류소. 누군가와의 약속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는 오후 2시의 백화점 근처. 그 어느 장소에서건 나는 일 없이 앉아 있으려했고 그 자리는 매번 마음이 평온해지기 위한 가장 최적의 장소가&amp;nbsp; 되어 주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때 나는 그렇게 앉아서 주변의 사소한 소리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엔진소리,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의 대화, 어느 나무에서 오는 새울음과 날개짓소리, 행인들의 발이 땅을 스치는 소리,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그런 소리들에 귀 기울였다. 피면서 지는 꽃, 내리면서 섞이는 비, 당신에게로 건너간 사랑한다는 말. 그런 것처럼 그 소리들은 그곳에서 생성되면서 동시에 소멸되고 있었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사라지는 소리들 사이에 가만히 앉아 있는, 분명히 현존하고 있는&amp;nbsp;내 육체와 정신. 그러나 어느날 내 귀와 얼굴과 그 속의 뼈들도 저 소리들처럼 흔적도 없이사라져갈 것. 그리고 내가 사라져간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amp;nbsp;소란스러움과 이 단단한 세계. &lt;br  /&gt;나는 그때 그 소리들이 수없이 생겨났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을 들으며 순간과 영원 같은 문제들, 삶과 죽음, 나의 육체와 정신. 그런 것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과 고통 없이 내가 스스로의&amp;nbsp;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대체로 평온으로 마무리 되었다.&lt;br  /&gt;&lt;br  /&gt;그 순간들로 인해 내가 삶에 대하여 성숙해졌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그때의 나는 오히려 성숙보다는 퇴보, 낮아짐, 잊음, 그런 것들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무엇이 되고, 무엇을 얻고, 무엇으로 불리고 하는 세상의 욕망에서 멀어지려고 마음을 기울였다. 세상에와서 이 짧은 생을 살면서 하나의 인간이 이루면 얼마나 이루고 버리면 또 얼마나 버릴 수 있겠는가. 모두 지상의 흙한줌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찌되었건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오히려 평온했었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나의 내면을 열고 우물처럼 어두운 그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어둠 속에서 눈이 그 어둠에 익숙해지 듯 내면으로 향한 나의 동공은 열리고 깜깜했던 내 마음의 윤곽이 희미하게 저를 드러내주는 순간. 나는 그것을 보았다. 보면서 웃고 보면서 울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모든 것들은 그렇게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lt;br  /&gt;&lt;br  /&gt;그러나 요 몇년 동안의 나는 그렇게 평온하게 앉아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내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내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좀더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늦게 오는 버스와 약속 시간에 늦는 애인에게 화를 냈으며 진행신호를 못본 채 서 있는 앞차에게 신경질적으로 길게 경적을 울려댔었다.&amp;nbsp; &lt;br  /&gt;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단축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인터넷 기사들을 모니터로 보면서 몇시간을 보내거나 드라마와 뉴스, 오락채널들에 빠져 멍하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고작 그렇게 하기 위하여 나는 앞차에 경적 울리며 도로를 질주했던 것인가.&lt;br  /&gt;&lt;br  /&gt;그것 또한 가치있고 적당한 삶의 휴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것은 휴식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티비와 같은 미디어 앞에&amp;nbsp;앉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노동이다. 시간당 수당을 받고 미디어 앞에 복무하고 있는 것. 복무의 댓가는 망각이다. 자신의 존재 위치에 대한 망각이랄까. &lt;/p&gt;&lt;p&gt;&lt;br  /&gt;&lt;/p&gt;
&lt;p&gt;숲에 가서 몇시간 씩 앉아 있어야 겨우 찾게 되는 그 존재의 가벼워짐을 저 달콤한 채널들은 5분안에 헌사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5분만 앉아 있을 수 없다는&amp;nbsp;것이 문제다. 잡히면 그것은 마약처럼&amp;nbsp;우리를 놓아주질 않는다. &lt;br  /&gt;망각의 상태도 물론 다르다. 숲에 앉아 있을 때 찾아와주는 존재의 망각은 실존의 충만과 함께 찾아온다. 채워지면서 비어있는 상태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앞의 망각은, 그저 존재가 허물어지는 망각일 뿐이다. &lt;br  /&gt;그리고 그것은 존재의 실존 의식을 함께 빼앗아가게 되므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좀비처럼 일어나 직장으로 뛰어가게 되는 것.&lt;br  /&gt;&lt;br  /&gt;나도 오랜동안 저 미디어의 채널 앞에 앉아 있느라 숲과 거리와 그 바람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버스에서 내린 종로. 그곳에서 보았다.&lt;/p&gt;
&lt;p&gt;메타세콰이어 나무와 그 아래 평온한 돌의자 몇개.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amp;nbsp;치마를 밀어&amp;nbsp;종아리의 윤곽을 드러내주는 유월의 저녁 바람들. 희미한 먼별.&amp;nbsp;대화 끝에 들리는 여자의 웃음소리.&lt;/p&gt;
&lt;p&gt;그곳에서&amp;nbsp;나는 문득 그 앉아있음의 평온과 수혜를&amp;nbsp;온전히 다시&amp;nbsp;기억해냈던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변화는 천천히 온다. 그러나 그 전환점은 일순간이다. 나는 다시 내 삶이 전환하는 것을 거기서 보았다. 마라토너는 전환점에서도 계속 뛴다. 나의 삶도 진행하면서 어디선가 전환하는 것인데 오늘 나는 종로 그 나무들 아래를 지나가다 생이 다시 한번 전환하게 된 것이다. &lt;br  /&gt;&lt;br  /&gt;나는 이제 일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내 자신 앞에, 당신 얼굴 앞에, 세상의 사람들과 나무와 벽과 저 구름과 총체와 객체들 앞에.&lt;br  /&gt;(2008년)&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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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드명세서와 냉동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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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9-29T11:38:25+09:00</published>
      <updated>2010-02-01T18:59:5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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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 jQuery1265018248031=&quot;89&quot;&gt;아직 연인이었을 때 할부로 선물해 준 카드 값이 헤어진&amp;nbsp;후 뒤늦게 청구되어 그것을 보는 심정이 괴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돈이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그 명세서가 잊었던 옛 기억을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lt;/p&gt;
&lt;p jQuery1265018248031=&quot;89&quot;&gt;이해한다. 흔한 이야기다.&amp;nbsp;&lt;/p&gt;
&lt;p&gt;&lt;br  /&gt;&lt;/p&gt;
&lt;p jQuery1265018248031=&quot;90&quot;&gt;당신과 헤어지고&amp;nbsp;몇 번&amp;nbsp;울었을 뿐 그런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우리의 인연이 거기까지였고 그 끝을&amp;nbsp;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기에 애쓰며 잘 견뎠다.&amp;nbsp;대체로 눈물은 가슴 근처에서 출렁일 뿐 얼굴까지 올라와 흘러내리지는&amp;nbsp;않았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론 버틸&amp;nbsp;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lt;/p&gt;
&lt;p jQuery1265018248031=&quot;91&quot;&gt;사랑할 때 내가 이름을 대신하여 당신을&amp;nbsp;부르던 &apos;부장님&apos;이라는 표현이 있었다.&amp;nbsp;오직 나와 당신만 알고 부르던 애칭이었다.&amp;nbsp;그것을&amp;nbsp;꼭 한번만 이라도 더 불러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을 때 처음으로 울었다. 빈방에서 울며 혼자&amp;nbsp;그 애칭을 소리내&amp;nbsp;불렀다. &lt;/p&gt;
&lt;p&gt;1200번 버스를 타고 당신 동네에 내려 서성이다 올려다 본 하늘에 달이 너무 아름다워 또 한번 울었다.&amp;nbsp;내가 당신을 기다리던 골목이 빈채로 환했다. 그 골목을 보며 울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jQuery1265018248031=&quot;92&quot;&gt;그렇게 울었던 날도 있었지만 나는 대체로 잘 견뎠다. &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일요일 오후였다. 그저 늦게 일어나 배가 고픈 평범한 일상의 순간이었다. 집에 뭐 먹을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뒤적이다 냉동실을 열게 되었다.&lt;/p&gt;
&lt;p&gt;그곳에 적당한 분량으로 나누어&amp;nbsp;비닐 봉지에 포장된 밥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언젠가 당신이 집에 와서 쌀 씻어 해두고 간 것이었다.&amp;nbsp;&lt;/p&gt;
&lt;p&gt;&lt;br  /&gt;&lt;/p&gt;
&lt;p&gt;&quot;라면 같은 거 끓여 먹지 말아요, 귀찮은거 잘 알아요, 그럼 냉동고에 한끼 분량씩 얼려 둘테니 이걸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드세요&quot;&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잊고 있던 당신의 그 말과 표정도&amp;nbsp;온전히 다 생각났다. 전자레인지도 당신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그날 그 언 밥을 꺼내 데워 먹으면서 나는 펑펑 울었다. 내게 눈물이 이렇게 많았었나&amp;nbsp;놀라면서 울었다. 눈을 타고 내린 눈물이 입에 스며 밥이 썼다. 목이 메여 힘주어 넘겼다. 꺼이꺼이 소리 내 계속 울었다. &lt;/p&gt;
&lt;p&gt;잘 견디고 있다 믿었던 것은 그저 내가 나를 속인 거짓말일 뿐이었다. 나는 그날 남김 없이 모두 무너져버렸다.&amp;nbsp;&lt;/p&gt;
&lt;p&gt;&lt;br  /&gt;&lt;/p&gt;
&lt;p&gt;할부 잔액처럼 당신이 내게 해주고 간 냉동밥은 아직 더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생과 그리움의&amp;nbsp;허기에 시달릴 때 구원처럼 내게 다시 청구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익혀 먹으며 또 울게 될 것이다. &lt;/p&gt;
&lt;p&gt;그러면서 살아 갈 것이다.&amp;nbsp;&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당신이 내게 선물해 준 것들이 더 있다. 내가 알지 못할 뿐. 냉동고에 들어 있는 것들. 옷장을 열어보면 추워지기 시작할 때 입기 좋은 옷들. 서랍 속의 새 원고지. 내 가슴과 마음 곳곳에 당신이 선물로 넣어 준 그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것은 내가 생의 모퉁이에 무릎이&amp;nbsp;꺾여 아플 때 치유의 묘약으로 오게 될 것이다. &lt;/p&gt;
&lt;p&gt;&lt;br  /&gt;&lt;/p&gt;
&lt;p&gt;할부처럼 나뉘어서 오래 청구될, 당신의 사랑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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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걸 질문하고 곧 잊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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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9-16T11:23:03+09:00</published>
      <updated>2009-09-16T14:24:4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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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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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아버지 직업은 구두수선. 24세. 취직 준비중.&lt;br  /&gt;&lt;br  /&gt;그녀는 지원동기에&lt;br  /&gt;&lt;br  /&gt;&apos;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거 같아요. 지금까지 일자리를 구하고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꼭 나쁘다고만 생각 하지는 않거든요. 나를 위해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알아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꼭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apos;&lt;br  /&gt;&lt;br  /&gt;이렇게 적었고&lt;br  /&gt;찾아 들어가본 미니홈피 상단엔 굵은 글씨로&lt;br  /&gt;&lt;br  /&gt;&lt;strong&gt;&apos;하루 하루 사는게 너무 행복해요&apos;&lt;/strong&gt;&lt;br  /&gt;&lt;br  /&gt;라고 적혀 있었다.&lt;br  /&gt;&lt;br  /&gt;스물 하나였던가 안산을 떠돌다가 조립공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반도체공장.&lt;br  /&gt;토요일 오후 기숙사에 배고픈 채로 누워있는데 같은 라인의 동료가 내 팔을 잡아 나를 불러 냈었다. &lt;br  /&gt;그의 말은 내가 나이를 한살 속였다는 것.&lt;br  /&gt;몇명이 둘러앉아 있는 곳 중앙에 서서 나이를 속여서 죄송하다고 모두들에게 사죄하라는 요구였다. &lt;/p&gt;
&lt;p&gt;그렇게 하지 않으면&amp;nbsp;좀 맞을 것이라는&amp;nbsp;말과 함께. &lt;br  /&gt;&lt;br  /&gt;그날 저녁 다시 배고픈 채로 기숙사에 누워 나는 현실을 비관했던가 아니면 더 나아질 상황을 낙관했던가.&lt;br  /&gt;&lt;br  /&gt;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때&amp;nbsp;그것을 오를 수 있게 하는 힘은 저 정상 뒤에&amp;nbsp;오래도록 수월한 내리막 길이 있음을 아는 것.&lt;br  /&gt;그러나 그런 것을 낙관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lt;br  /&gt;&lt;br  /&gt;낙관이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긍정의 태도. 언덕 너머 내리막이 있음을 미리 알고 있는 자가 갖는 희망은 낙관이 아니라 지식의 한 종류인 것이다. &amp;nbsp;&lt;br  /&gt;할 것은 하고 난 뒤에 겸허하게 기다리면서 마음으로 얹는 응원.&lt;br  /&gt;&lt;br  /&gt;그 마음의 자세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lt;br  /&gt;&lt;br  /&gt;어제 세탁 후 처음 입은 옷은 질감이 부드럽고 &lt;br  /&gt;내려다보는 거리는 봄에게서 온 체온으로 따뜻한 것.&lt;br  /&gt;&lt;br  /&gt;급여도 없고 혜택도 소소한 자리에 지원한 24살. &lt;/p&gt;
&lt;p&gt;취직 준비 중.&lt;br  /&gt;그의 삶을 진보시키는데 비관과 낙관의 자세 중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lt;br  /&gt;&lt;br  /&gt;그걸 잠깐 질문해보고 곧 잊어버리기.&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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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주 오래더 당신과 헤어져야만 하는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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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9-16T11:17:47+09:00</published>
      <updated>2010-02-01T19:01:18+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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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전화를 하려다 놀라서 그만 둔다. 우리는 헤어진 것. &lt;/p&gt;
&lt;p&gt;여보세요? 일어났어? 하는 말들이 습관처럼 빈 입에서 맴돌다 사라진다.&lt;/p&gt;
&lt;p&gt;&amp;nbsp;&lt;br  /&gt;헤어짐은&amp;nbsp;만남이 종결되는 그 한&amp;nbsp;순간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와 행하던 사소한 일들을 더는 하지 못할 때 그 순간순간이 모두 헤어짐이다.&amp;nbsp;&lt;/p&gt;
&lt;p&gt;오늘 아침&amp;nbsp;전화를 하려다가 그만 둔 것. 함께 자주 가던 그 식당 앞을 홀로 지날 때. 1002번 버스 정류장. 꽃을 보고서도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없을 때. 그 순간. 함께 할 수 없는 모든 순간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인을 잃은 기억들이 마음 속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져가는 것 역시 헤어짐에 속한다.&amp;nbsp;상실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삶의 순간들.&amp;nbsp; &lt;/p&gt;
&lt;p&gt;아, 이건 당신이 좋아하던 색이었는데,&amp;nbsp;이 노래는 그때 들렸던 것.....&amp;nbsp;그것을 떠올릴 때, 그&amp;nbsp;순간 역시 헤어짐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헤어진다는 것의 본질적 슬픔은 그것이다. 헤어짐 뒤 헤어짐이 오래 반복하여 생겨난다는 것.&amp;nbsp;&lt;br  /&gt;&lt;br  /&gt;&lt;/p&gt;
&lt;p&gt;그러나 헤어짐이 매번 반복하여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사랑도 그러했다. &lt;/p&gt;
&lt;p&gt;당신과 사랑할 때 사랑은 매순간 반복하여 생겨났었다. 그때. 남산을 걸어내려오다 들렀던 커피숍.&amp;nbsp;그곳에서&amp;nbsp;음악에 맞춰 웃으며 노래하던&amp;nbsp;당신.&amp;nbsp;꽃을 보니 그대가 생각났었다는 메시지에 &quot;나는 당신을 보면 꽃을 생각하는걸요&quot; 라고 내가&amp;nbsp;회신 보낼 때.&lt;/p&gt;
&lt;p&gt;그 순간 순간. 매번 다시&amp;nbsp;생겨나던 사랑. &lt;/p&gt;
&lt;p&gt;&amp;nbsp;&lt;/p&gt;
&lt;p jQuery1265018453656=&quot;89&quot;&gt;그렇게 당신과 만날 때 매번&amp;nbsp;생겨나던&amp;nbsp;사랑처럼, 이제 내가 느껴야 하는것은 매&amp;nbsp;순간의&amp;nbsp;헤어짐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jQuery1265018453656=&quot;90&quot;&gt;그렇다면 이제 나는 얼마나 더 당신과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lt;/p&gt;
&lt;p jQuery1265018453656=&quot;91&quot;&gt;아마도 당신을 만나는 동안 생겨났던 그 사랑과&amp;nbsp;동일한&amp;nbsp;분량으로 헤어짐을 겪어야 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 jQuery1265018453656=&quot;92&quot;&gt;그래서 나는&amp;nbsp;앞으로 오래도록&lt;/p&gt;
&lt;p&gt;당신과 매순간 순간 헤어져야만 한다.&lt;/p&gt;
&lt;p&gt;&amp;nbsp;&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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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녀의 온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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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9-14T09:35:18+09:00</published>
      <updated>2009-09-27T21:10:24+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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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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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의 온도가 평소보다 차갑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당신이 먼저 씻으면서 당신에게 익숙한 온도로 조절해 둔 것. 다시 온도를 높여 씻으면서 생각한다. 내게 익숙한 온도와 당신의 온도는 조금 다르구나.&amp;nbsp;&lt;/p&gt;
&lt;p&gt;그 사소한 차이가 나는 늘 슬펐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당신과 헤어지고 당신의 온도에 맞춰 몸을 씻어보는 날이 있다. 여전히 차갑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흘러가고 당신도 내게 흘러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구분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amp;nbsp;&lt;/p&gt;
&lt;p&gt;생각해보면 몸은 그대로였다.&amp;nbsp;&lt;/p&gt;
&lt;p&gt;내게 싱거운 음식을 당신은 적당하다 했고 당신이 더워서 이불을 밀어둘 때 나는 그것을 가슴께까지 덮어야 잠들 수 있었다.&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이제 당신은 내게 돌아올 수 없다. 몸이 서로 가까이 있을 수 없다. 등에 떨어지는 물줄기가 뜨거워 당신이 젖은 몸으로 레버를 돌려야 하는 일도 이제는 없다.&amp;nbsp;&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우리가 더 오래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내 몸은 당신의 온도에 익숙해졌을까.&lt;/p&gt;
&lt;p&gt;&lt;br  /&gt;&lt;/p&gt;
&lt;p&gt;오늘, 당신의 온도로 다시 몸을 씻어본다.&amp;nbsp;&lt;/p&gt;
&lt;p&gt;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다.&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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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버지는 몇시간 뒤 다시 내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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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8-27T16:18:51+09:00</published>
      <updated>2010-02-01T19:04:5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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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시간이 조금 지난 과거의 일은 분명히 기억하시는데 조금 전의 일들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 없다. 그러니까 일주일 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던 상황은 모두 기억하면서 두시간 전, 어머니를 병실에서 보고 온 것은 기억해내지 못한다.&amp;nbsp;&lt;/p&gt;
&lt;div jQuery1265018587593=&quot;88&quot;&gt;&lt;br  /&gt;
&lt;div&gt;막 병원에서 돌아와 때늦은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는 말씀하신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quot;네 엄마 잘 있는지 궁금하다. 병 문안 가자&quot;&lt;/div&gt;
&lt;div&gt;&quot;아버지, 조금 전에 저랑 같이 다녀오셨잖아요, 가서 엄마 이마도 쓸어주시고......기억 안 나세요?&quot;&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어머니가 없으면 이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아버지로 하여금 자꾸만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다.&lt;/div&gt;
&lt;div&gt;&amp;nbsp; &amp;nbsp;&amp;nbsp;&lt;/div&gt;
&lt;div&gt;손톱같던 식사를 끝내고 연한 팔로 깍지 낀 채 쇼파에 앉아 말이 없으시다가 다시 내게 물으신다. 네 엄마, 잘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시켰다고 하지 말고 네가 전화 한번 해봐라.&lt;br  /&gt;&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박씨 집성촌에 홀로 흘러들어 온 뒤 가난했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집안의 남자들은 그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서 강해지고 독해져야 함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 희미한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께 듣던 당신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늘 싸움에 관한 일화들이 등장한다. 가난을 이겨내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당신들께서 박씨 가문들과 어떻게 싸워왔는지를.&lt;/div&gt;
&lt;div&gt;그 싸움은 때론 주먹다짐이었고 때로는 누가 더 아침 일찍부터 저녁늦게까지 힘겹게 일하는지에 대한 경쟁이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토론과 주장에서 의견의 굽힘없음 같은 종류이기도 했었다.&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가난했던 아버지. 그러나 그 가난때문에 무시당하고 싶지 않으셨던 젊은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의 그 어떤 언쟁에서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분이셨다. 명확한 기억력과 논리를 바탕으로 마을 어른들의 주장을 하나씩 굽혀나가시곤 했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소 아버지를 어려워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어려워하는 동네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그 가난을 위안 받았는지도 모른다. 돈은 없지만 쉬운 집안이 아니다. 내 아들과 딸은 쉬운 집안, 호락호락한 집의 아들 딸들이 아니다.&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아버지께서는 독하게 일하셨다. 부러지기 직전의 강도로 일하셨다고 해야할까. 그 마른 체구로 체중의 몇배가 되는 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옮기셨고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쉼 없이 일하셨다. 해마다 마을의 노는 땅을 얻어 씨앗들을 뿌렸고 가을엔 사람들의 도움없이 혼자 그 많은 수확을 다 끝내곤 했다.&amp;nbsp;&lt;/div&gt;
&lt;div&gt;작은 시골 동네에서 이제 아버지는 재산으로 따지면 몇번 째 순위 안에 들게 되었다. 가끔 이야기 하신다. 아들아. 그래도 내가 동네에서는 무시 당하고 살진 않았다. &amp;nbsp;아들아. 그래도 내가 먹고 죽을 만큼은 벌어 놓았다.&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
&lt;div&gt;사실 젊은 시절 아버지께서 발현할 수 있었던 모든 강직함의 근원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부드러운 내조가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젊어서는 그것을 알 수 없었던 아버지. 당신이 한 게 무엇있소. 그러한 표현으로 어머니를 울리실 때도 있었다.&lt;/div&gt;
&lt;div&gt;그러나 그것은 젊은 날의 아버지였을 뿐. 이제 늙어 몸과 마음이 점점 기울어갈 때 투항하듯 고백처럼 아버지는 어머니를 한없이 인정하던 참이었다.&amp;nbsp;&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quot;네 엄마가 없었다면...&quot;&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아버지의 기력이 급격히 쇠약해진 이후부터 부쩍 나를 불러 앉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잦아졌다.&amp;nbsp;&lt;/div&gt;
&lt;div&gt;그것을 곁에서 듣던 어머니는 싫지 않은 듯 웃으시며 말씀하곤 했었다.&amp;nbsp;&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quot;이 양반이 늙어서야 드디어 철 드나. 오래 살고 볼 일&quot;&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그러니까 아버지는 나를 매개로 하여 어머니께 고백을 하셨던 셈이다. &amp;nbsp;결국 곁에 있고 서로 기대어줄 사람은 당신과 나 밖에 없다는 것. 젊은 시절 당신이 그러해 준 것처럼 늙은 내게도 끝까지 힘이 되어 달라는 부탁들.&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그러나 그렇게 구원과 같은 어머니께서 병으로 쓰러져 누었다고 할 때 느끼는 아버지의 불안은 어쩔 것인가.&amp;nbsp;&lt;/div&gt;
&lt;div&gt;별일 아니예요. 며칠 좀 쉬시고 약드시면 일어나실 수 있대요, 그렇게 몇번이고 말씀드려도 아버지는 믿지 못하시고 눈이 자주 젖곤 하셨다.&amp;nbsp;&lt;/div&gt;&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 jQuery1265018587593=&quot;90&quot;&gt;내가 시켰다고 하지 말고 네가 전화 한번 해봐라 하고는 통화를 하고 있는 내 곁에 다가와 귀로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신다.&amp;nbsp;&lt;/div&gt;
&lt;div jQuery1265018587593=&quot;91&quot;&gt;아버지, 엄마 바꿔드릴까요? 물으면, 아니다, 됐다, 말씀하시며 저만큼 되돌아가 앉으신다. &lt;/div&gt;
&lt;div jQuery1265018587593=&quot;91&quot;&gt;그래도 다시 한번 통화를 권할 때,&amp;nbsp;아버지는 머뭇거리다가 얼굴 빛이 환해져서 다가오신다.&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quot;점심은 먹었는가? 당신 걱정하는게 아니라 그냥 궁금한거야 성규도 와 있고 하니까 그냥&quot;&amp;nbsp;&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아버지는 몇시간 뒤 다시 내게 말씀하실 것이다. 네 엄마에게 전화 한번 해보자. 내가 시켰다고 하지말고.&amp;nbsp;&lt;/div&gt;&lt;/div&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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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대 위에서 나는 울 것</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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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8-27T16:18:12+09:00</published>
      <updated>2009-09-13T12:24:0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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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구멀미</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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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br  /&gt;&lt;p&gt;간혹 그와 마주친다. 오늘은 외근에서 돌아오던 한적한 엘리베이터에서 였다. 희미한 담배 냄새가 그에게서 풍겼다. 그를 만나면 무언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건네야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이어야 한다. 마침 엘리베이터의 LCD패널에서 증권정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lt;/p&gt;
&lt;div&gt;&quot;미국 주식 많이 떨어졌네요. 맨날 널뛰기...&quot;&lt;/div&gt;
&lt;div&gt;그와 나는 간단히 주식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눌 소재가 있다는게 고마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무엇인가 일상적인 이야기, 그런 것들을 찾아내 그와 얘기해야 한다. &lt;/div&gt;
&lt;div&gt;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와 나는 동행하여 사무실로 들어간 뒤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모르는 사람들처럼 사무실에선 서로 아는 채를 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마주치면 엷은 목례만 건넬 뿐이다. &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그는 얼마전 까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인해 어느날 갑자기 업무를 놓게 된 것이다. 대기발령은 죽음처럼 예고없이 그에게 찾아왔다. 팀장과 면담을 하고 돌아온 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려 애쓰던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려고 애쓰는 얼굴만큼 슬픈 것은 없다. &amp;nbsp;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간단한 짐만 챙겨 사무실 가장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배된 것이다. &lt;br  /&gt;&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처음 며칠은 그의 분노에 함께 동조하기도 했다. 이 구조적인 모순과 어쩔 수 없는 것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거기 회사에 대한 분노와 일말의 희망이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마음에서 출발했고 마음까지 닿을 수 있었다. 처음 며칠은 그랬다.&lt;/div&gt;
&lt;div&gt;시간이 지날 수록 그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게되었다. 그가 사무실 구석자리에서 비석처럼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amp;nbsp;&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사실 마주친다 해도 길게 이야기 나눌 수는 없었다. 대화가 점점 상황의 중심에 닿지 못하고 피상 쪽에서만 맴돌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quot;여러가지로 힘들지요? 조금만 더 견뎌보세요&quot; 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mp;nbsp;&quot;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뭐 다 그런거지요&quot; 라고 그가 애써 대답할 것을 알기에 그 쓸쓸한 문답을 꺼낼 수가 없는 것이 었다.&amp;nbsp;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구내식당에서 합석하게 되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엇인가를 계속 이야기 해야만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슨 말인가를 자연스럽게 함으로써 -저는 이 상황, 당신이 처한 상황을 불쌍히 여기지 않아요...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라고 보여줘야만 했다.&amp;nbsp; &lt;br  /&gt;&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침묵이 견딜 수 없고 침묵이 슬퍼서 이야기를 해야하는 상황은 쓸쓸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무슨 말인가를 꺼낼 때,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서로 잠시 견디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때로 날씨, 주식, 옷차림 등을 이야기 했지만 주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 대화가 목적이 아닌 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lt;br  /&gt;&lt;br  /&gt;&lt;/div&gt;
&lt;div&gt;내가 상관도 없는 주제의 이야기들을 꺼내면 그도 그것에 맞춰 답을 한다. 가끔 웃고 끄덕이다 사무실에 들어와 목례한 뒤, 낯선 타인처럼 외면하면서 자리로 돌아가서 앉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일상이 분주한 듯 서류들을 꺼내 책상위에 펼친다. &lt;br  /&gt;&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우리는 살면서 많은 상황을 맞게 된다. 그에게 지금 온 상황을 어느날 내가 겪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며칠간 분노하다가 결국 유령처럼, 없는 존재로 남아 사무실에 말없이 앉아 있게 될 것이다. &lt;/div&gt;
&lt;div&gt;복도와 식당에서 동료들과 만나면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lt;/div&gt;
&lt;div&gt;그러다가 결국 지쳐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더 좋은 곳을 찾았어요. 삶의 새로운 계기가 될거예요, 말하겠지만 그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속에 숨겨져 있는 비애와 쓸쓸함을 사람들을 읽어낼 것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모든 희망속엔 불안이 내재하지만 마찬가지로 불안 속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상황이와도 견딜 수 있다. 그도 견딜 것이고 나도 견딜 것이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lt;/div&gt;
&lt;div&gt;그러나 그와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서로 아무렇지도 않으려 애쓸 때, 그 짧은 쓸쓸함은 견디기 쉽지 않다. 큰 것들은 잘 견뎌낼 수 있지만 작은 것들 앞에 우리는 무너진다. &lt;/div&gt;
&lt;div&gt;&lt;br  /&gt;&lt;/div&gt;
&lt;div&gt;월요일이면 다시 그를 볼 것이다. 우리는 서로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일상의 이야기들을 주고 받을 것이다. 삶이라는 무대위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lt;/div&gt;
&lt;div&gt;그러다 어느날, 어느 순간 연극은 끝나고 탈의실로 되돌아가 옷을 갈아입으며 거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실컷 본연의 모습이 되어 울 것이다. &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그러나 나는 무대 위에서 울게 될지도 모른다. &lt;/div&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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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기 전환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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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8-27T16:17:30+09:00</published>
      <updated>2009-09-13T12:45:25+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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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부천역 근처 선풍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 스무살 무렵.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다. 모집 공고를 보고 전화를 하였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소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고 가끔 뜨거웠다는 것이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멈춰 있으면 급속히 썪어 갈 것처럼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amp;nbsp;&lt;br  /&gt;&lt;br  /&gt;겨우 쇼핑백 하나 정도의 짐을 들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작업복을 입어야 했고 현장에선 안전화를 신었기에 별다른 짐은 필요 없었다. 칫솔과 수건, 외출복, 운동복 하나, 내의 몇 개 그리고 꼭 지녀야 했던 책 몇 권이 전부였다. &lt;br  /&gt;&lt;br  /&gt;기숙사는 군대식 상하 관계로 운영 되었다. 각 방마다 일곱 명 정도가 묵고 나이와 공장의 직급으로 서열을 정했다. 가장 높은 서열이 창가 텔레비전 쪽에 눕고 그 뒤로 방의 입구까지 차례로 누웠다. &amp;nbsp;&lt;br  /&gt;나는 막내였다. 막내는 그 방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다. 청소와 심부름과 굴종과 그에 따르는 적당한 비굴함까지 막내의 몫이었다. &lt;br  /&gt;아침마다 엎드려 방을 닦고 &amp;nbsp;가습기의 물을 채우고 입구의 슬리퍼를 정리했다. &amp;nbsp;치약과 등기 우편물을 관리실에서 대신 받아 왔고 주말이면 창가의 화분과 선배들의 빨래를 옥상 빛 좋은 곳에 옮겼다. &amp;nbsp;외출을 준비하는 선배들의 구두를 닦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이 나의 몫이었다. 나는 거기서 막내였다. &amp;nbsp;&lt;br  /&gt;때론 부탁을 가장한 명령들과 &amp;nbsp;&apos;니깐 놈이 뭘 알아&apos; 라는 조소와 무시들도 있었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견뎠다. &amp;nbsp;나는 막내였고 공장을 나서면 갈 곳이 없었다. &amp;nbsp; &amp;nbsp;&lt;br  /&gt;&lt;br  /&gt;도열하여 아침 체조를 마친 뒤 작업 라인에 서면 일정한 속도로 반조립 상태의 선풍기가 흘러 왔다. &amp;nbsp;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부터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까지. 그리고 잔업의 두 시간 동안 그 흐름은 끝이 없었다. &lt;br  /&gt;나는 선풍기 뒷 머리 쪽을 몸체에 고정하는 일을 맡았다. 압축 공기로 작동하는 전동 드라이버를 사용해 4개의 볼트를 끼우고 선풍기를 다시 라인에 올려 놓는 일이었다.&amp;nbsp; 뒷 라인의 작업자는 내가 고정시켜 둔 부분에 플라스틱 뚜껑을 덮었다. 라인은 뒤로 끝 없이 흘러 갔다. &amp;nbsp;&lt;br  /&gt;잘 안 되었다. 잘 안 될 때 라인은 뺨을 때리 듯 빨랐다. 미리 쥐고 있던 볼트를 손가락으로 잡고 코일과 코일 사이 좁은 틈에 밀어 넣는 게 요령이었다. 그걸 알지 못했을 때 라인의 속도 보다 내가 느렸다. 조립하지 못한 선풍기들이 짐처럼 바닥에 쌓였다. 바닥에 선풍기가 하나 내려 온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 당 조립 갯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려놓은 선풍기가 다섯대를 넘어서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작업반장이 달려와 곁에서 도왔다. 도우면서 꾸짖었다. 네가 밀리면 너의 뒤 모든 라인이 쉬게 된다. 그걸 내가 도와 두대를 한번에 라인에 올려 놓으면 뒤의 모든 사람들이 바빠진다. 작업 반장의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 경고의 의미였다. 나는 경고를 자주 받았다. 그러나 익숙해져갔다. 눈치로 요령들을 터득했다. 익숙해 지자 숨을 쉴 수 있었다. 라인의 속도보다 내가 빨랐다. 작업 하면서 농담도 할 수 있었다. &amp;nbsp;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몇개월이 흘러갔다. &lt;br  /&gt;&amp;nbsp;&lt;br  /&gt;2주는 낮 근무 1주는 야간 근무였다. 야간 근무 땐 새벽 3시부터 1시간 동안 휴식 시간이었다. 뱀처럼 기어 가던 라인이 정지하면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눕곤 했다. 저것은 오리온, 저것은 북극성, 나는 스무 살, 드러난 뼈같은 별들. 그 휴식은 독백들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등이 차가웠으므로 바닥에 폐박스를 깔고 덮었다. 그게 따뜻했다. 사람 같았다. &lt;br  /&gt;한달 만근으로 일하고 삼십 여 만원을 받았다. &lt;br  /&gt;&amp;nbsp;&lt;br  /&gt;휴일은 있었다. 외출증을 작성하고 나서면 공장 밖의 빛은 따뜻하고 좋았다. 갈 곳이 없었으므로 걸었다. 그 수퍼 옆. 낙서로 시작되는 그 골목을 시작으로 컨베이어 벨트 라인처럼 나는 걸었다. 뺨을 때리 듯 빠르게. 때론 뱀 처럼 천천히. &lt;br  /&gt;골목은 골목과 닿아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다시 내게 끝없이 선풍기들은 흘러 올 것...그걸 생각하며 걸었다. 그리고 그걸 잊으면서 걸었다. 어디로 향하지 않고 흘러가지도 않은 채 라인 앞에 비석처럼 서 있어야 하는 내 삶. 그 멈춤을 만회하려는 듯 걸었다. 휴일이면 아프게 걸었다. &lt;br  /&gt;&lt;br  /&gt;어느 날이었다. 오전 작업을 끝내고 식당 입구에 들어 섰을 때였다. 한 여자가 있었다. 관례처럼 남자와 여자가 다른 줄을 서서 식사를 기다렸는데 건너 편 쪽 여자에게서 빛이 흘렀다. 얼굴이 환했다. 눈이 맑았다.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표정과 외형 속에 숨긴 듯 보였다. 숨겼는데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내게만 보이는 그 무엇인지도 몰랐다. &lt;br  /&gt;&lt;br  /&gt;그것은 아니었다. 뒤에 서 있던 동료가 내 어깨를 툭 쳤던 것이다. 그가 그 여자를 가르켰다. 그리고는 내게 동의를 구해 왔다. &lt;br  /&gt;삼개월 전부터 기숙사 같은 방에서 함께 막내로 지내던 친구였다. &lt;br  /&gt;야, 저 여자 좀 봐. &lt;br  /&gt;&lt;br  /&gt;긴 생산라인의 중간에 서서 하루 종일 볼트를 끼워 넣거나 사출기가 쿵하고 내려 오면 거기 찍혀 나온 뜨거운 플라스틱 선풍기 날개를 박스에 넣는 일. 시키면 방을 닦고 흘러오면 조립하는 일. 그런 일들이 전부였던 우리들에게 그 여자와 그 여자에 대한 인식은 생경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식판에 밥을 담고 반찬을 넣고 빈 식탁에 앉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은 두가지였다. 그 여자를 보는 일. 마음이 오랜만에 요동치는 일.&lt;br  /&gt;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그 여자에게 다가서기로 결심했다. &lt;br  /&gt;&amp;nbsp;&lt;br  /&gt;그 여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수소문하여 어느 라인에 근무하고 있는지도 알아냈다. 모터 생산파트. 자석 위에 코일을 감는 쪽. 생산 3라인. 그러니까 내가 조립하고 있는 그 모터 뭉치를 생산하는 쪽이었다. 나는 그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그때까지 내가 조립했던 그 것. 죽도록 싫었던 그 부품. 혹시 그녀가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일이 즐거워졌다. 조립 속도가 더 빨라졌다. &lt;br  /&gt;&lt;br  /&gt;일과가 끝나면 동료와 나는 어떤 방법을 통하여 그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 했다. &amp;nbsp;고민은 길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등장했고 모든 방법이 부정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 고민의 시간은 씨앗의 발아처럼 젊은 우리의 내면을 한없이 부풀렸다. &lt;br  /&gt;&lt;br  /&gt;우리는 젊어서 순진했고 세상 물정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므로 순백할 수 있었다. 순백으로 거기에 매달렸다. 내가 골목을 미친듯이 걸었던 것과 그 여자에게로의 몰입은 어쩌면 비슷한 종류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부품 같은 시절에 부품이 아닌, 피어나는 꽃, 부는 바람 같은 일을 우리는 찾아 냈던 것이다. &lt;br  /&gt;&amp;nbsp;&lt;br  /&gt;그림에 소질이 있던 친구가 그 여자의 얼굴을 실물 크기로 그려서 선물 하기로 했다. 입술은 그리지 말고 립스틱으로 찍어달라고 하자, 내가 제안했다. 언제 마추칠지 모르는 점심식사. 그리고 휴게실. 그곳을 우리는 서성이며 그 여자 와의 우연을 기다렸다. 가끔은 스쳐 지나갔다. 우연을 가장하여 옆 테이블에 앉기도 했다. 관심없는 타인처럼 그렇게 앉아 그녀가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훔쳐 보았다. 그런 순간들은 행운처럼 왔다. 기다려서 왔다. &lt;br  /&gt;친구는 그 여자의 얼굴을 스치며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억했다가 그림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확인하려고 그 여자와 우연히 만날 순간들을 기다렸다. &lt;br  /&gt;&lt;br  /&gt;그림이 완성되는데 2주 가까이 걸렸다. 그림은 완성되었다. 실물과 같았다. 아름다운 여자였으므로 그림도 아름다웠다. 선들은 세밀했고 사실적이었다. &lt;br  /&gt;내가 가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당신은 참 예뻐요. 그래서 그렸으나 차마 입술은 그릴 수 없었어요. 여기 입술을 찍어주세요. 유치한 연극의 대사와도 같은 그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여 연습했다.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열흘이 더 지나서야 그림을 건넬 수 있었다.&lt;br  /&gt;&lt;br  /&gt;&quot;너무 예쁘셔서 저희가 그쪽 얼굴을 그렸봤습니다, 그런데 입술은 차마 그릴 수 없었고요. 여기 좀 찍어 주시면&quot;&lt;br  /&gt;&amp;nbsp;&lt;br  /&gt;나는 떨려서 간단히 말했다.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필 마음의 겨를이 없었다. 다음 휴일 몇시 여기서 기다릴께요. 그렇게만 말하고 동료와 나는 뒤돌아 섰다. 그리고 뛰쳐나왔다.&lt;br  /&gt;&amp;nbsp;&lt;br  /&gt;그 며칠, 그러니까 여자에게 그림을 건네고 뛰어 온 며칠 동안 우리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그것은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응답에 대한 기대 만은 아니었다. 응답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부풀어 올랐다. 그 여자와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휴일이면 소풍을 가고...단풍나무 아래 가서 앉고 나는 편지를 쓰고...&lt;br  /&gt;&amp;nbsp;&lt;br  /&gt;그런 것들은 우리가 오랜 동안 잊고 지내 온 말이었다. 꿈이라는 말, 낙엽과 향기와 비와 구름이라는 말, 새옷과 근사함과 내일이라는 말, 그런 말들이 우리에게 다시 생겨났던 것이다. &lt;br  /&gt;공장에 가져와서 오래도록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펼쳐 읽었고 친구는 계속해서 그 여자의 얼굴을 그렸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꿈이 화가라고 내게 말해 왔다. &amp;nbsp;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답했다.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생각했다. 그는 물감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그에게 내 꿈을 고백 처럼 말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리고는 오래 고개 끄덕여줬다. &lt;br  /&gt;우리가 잊고 있었으나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고 우리는 그것으로 부풀어 올랐다. &lt;br  /&gt;&lt;br  /&gt;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순박한 청년이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 여자도 생산 라인에 로봇팔을 대신하여 서 있던 여공의 하나일 뿐이었다. 취미로 여공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에도 삶은 정박이었을 것이며 미래는 사치였을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자신에게 조금은 의외의 일이 생겨 난 것이고 그도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조금은 부풀었을 것이다. 볼트와 너트처럼 줄지어 오는 생산라인의 어떤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 뛰고 피고 땀차 오는 그런 것. 그것을 그 여자도 느꼈을 것이다. &lt;br  /&gt;&lt;br  /&gt;입술을 찍어달라고 그림을 건넨 뒤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여자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고개 돌렸고 주위의 친구들은 무엇이 좋은지 킥킥 웃었다. 잘 되었구나. 우리 둘은 생각하고 우리도 웃었다. 여자도 기뻐하는구나. 잘 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lt;br  /&gt;그러나 끝내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lt;br  /&gt;&lt;br  /&gt;그 여자와의 약속 하루 전날 저녁. 내일의 약속을 위해 새 남방과 바지를 사서 들고 들어 온 우리를 기숙사 고참이 옥상으로 불러 냈다. 서른 정도 먹었을 그는 작업 반장이었다. 지갑을 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너네 둘이 가져간 것을 다 안다는 것. 목격자도 있다는 것이었다. &lt;br  /&gt;&lt;br  /&gt;&quot;요즘 너희 둘, 매일 옥상에 올라가서 수근거렸지. 처음부터 이상했어. 보니, 보란 듯이 옷도 샀더구만. &amp;nbsp;다 알고 있으니까 가져와. 이것들이 남의 돈 훔쳐서 옷을 사?&quot;&lt;br  /&gt;&lt;br  /&gt;아니었다. 아니 었으므로 아니라고 말하자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자백하라고 그가 말했다. 말은 비웃음을 타고 들려왔다. 억울했다. &lt;br  /&gt;&lt;br  /&gt;&quot;우리는 겨우 지갑 따위를 훔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quot;&lt;br  /&gt;&lt;br  /&gt;내가 말했다. 감정이 섞여 있는 음성이었다. 억울해서 내뱉은 말이었다. &lt;br  /&gt;&lt;br  /&gt;&quot;허&quot;&lt;br  /&gt;&lt;br  /&gt;&lt;/p&gt;&lt;p&gt;작업반장은 황당한 듯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lt;br  /&gt;&lt;br  /&gt;&lt;/p&gt;&lt;p&gt;&quot;내게 너희들은 지갑 따위 훔칠 놈들로 보인다. 너네들은, 너네 자신을 그렇게 모르겠어. 너희들은 한마디로...&quot; &lt;br  /&gt;&lt;br  /&gt;그는 말을 끊고 잠시 침묵하더니 나의 얼굴을 주먹으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너희들은...그는 표현할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 다는 듯 그 말을 반복하며 내 얼굴과 가슴과 어깨 곳곳을 툭툭 쳤다. 그 말이 생각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듯 보였다. &amp;nbsp;아프지 않게 때리는 것이어서 더 치욕이었다. &lt;br  /&gt;&lt;br  /&gt;나는 어쩌지 못하고 그의 조롱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몇개월 동안 지속된 위계질서에 익숙해진 탓도 있었고 힘으로는 그를 어쩌지 못한다는 패배감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 우리의 존재 위치를 규정하는 그의 다음 말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apos;너희들은 한마디로&apos; 뒤에 나올 그 말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묘한 궁금증도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것을 즉시 부정하고 싶었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lt;/p&gt;&lt;p&gt;그래서 기다렸다. &amp;nbsp;&lt;br  /&gt;&lt;br  /&gt;나의 곳곳을 툭툭 치던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lt;br  /&gt;&lt;br  /&gt;&lt;/p&gt;&lt;p&gt;&quot;아, 그래 너희들은 말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어떤 존재냐 하면은 한마디로 말해서&quot;&lt;br  /&gt;&lt;br  /&gt;그때였다. 옆에서 묵묵히 고개 숙이고 있던 동료가 갑자기 짐승처럼 소리를 지렀다. &amp;nbsp;소리침과 동시에 주먹을 뻗어 방심하고 있던 작업 반장의 얼굴을 쳤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어서 작업반장도 어쩌지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lt;br  /&gt;&lt;br  /&gt;&quot;이 개새끼, 뭐라고. 우리가 뭐?. 왜 우리를 니가 정의 하는데&quot;&lt;br  /&gt;&lt;br  /&gt;동료는 소리쳐 울분하며 그 선배의 얼굴을 계속 쳐 댔다. 얼굴에 주먹이 닿아 둔탁한 소리들을 냈다. 그치질 않았다. 입술이 터져 옥상 푸른 바닥에 피가 툭툭 떨어져내렸다. 작업반장은 대응하지 못했다. 아, 이, 어, 너, 등의 단음 들만 내 뱉을 뿐이었다. &lt;br  /&gt;&lt;br  /&gt;동료는 참지 않았다. 나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넘어진 작업반장을 무참히 밟았다. &lt;br  /&gt;&lt;br  /&gt;&lt;/p&gt;&lt;p&gt;&quot;너는 내가 오늘 죽인다. 죽이고 끝낸다. 나는 도둑놈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apos;이원우&apos;다&quot;&lt;br  /&gt;&lt;br  /&gt;동료는 빨래 건조대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벽돌을 들어 넘어져 신음하는 작업반장의 등을 내리 쳤다.&lt;br  /&gt;&lt;br  /&gt;그날 우리는 그 기숙사를 나왔다. 짐도 다 챙지지 못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눈에 보이는 것들만 챙겨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 거리를 달려 안심이 되었을 때 허기진 배를 채우며 그와 처음으로 술 한잔을 마셨다. 동료는 그 여자를 그린 그림들도 갖고 나오지 못했다고 내게 말했다. 눈물이 글썽였다. 여기, &amp;nbsp;살면서 잊지 않겠다고 내가 말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잘했다고 대답해줬다. &lt;br  /&gt;&lt;br  /&gt;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버스를 타고 서울 친척집으로 갔고 동료는 시골로 내려갔다. 그 후로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lt;br  /&gt;&lt;br  /&gt;다음 날 그 여자는 기다렸을 것이다. 우리가 그려 준 그림에 입술 자욱 찍고서 몇명의 동료들과 기다렸을 것이다. 청년 둘은 하나의 시대를 끝내고 다음 시대로 건너 가느라 거기 갈 수는 없었다.&amp;nbsp;&lt;/p&gt;&lt;p&gt;그러나 우리가 그 여자에게 그림을 건네며 본 것은 희망이라는 말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내면으로 들어온 씨앗이었다. 미래라는 말. 그것이었다.&amp;nbsp;&lt;/p&gt;&lt;p&gt;우연히 일어난 일. 생에서 스쳐가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하나지만 그것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되고 있다. 그 순간이 내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기 때문이다. &amp;nbsp;삶은 그때 내 길을 전환 시켜 주려고 했었고 거기 그 아름다운 여자, 지금은 이름과 얼굴과 모든 것이 생각나지 않는 그 여자를 등장 시켜 주었던 것이다. &lt;br  /&gt;&lt;br  /&gt;그 여자에게도 그 순간이 전환점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 조립공의 삶이 저급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자신의 아름다움. 조립공이 아니라 그 자신, 그 존재 자체로서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그림에 입술을 찍으며 알게 되었기를 바란다. &lt;br  /&gt;&lt;br  /&gt;볼 수는 없었지만 그려지는 그 풍경이 있다. 그 휴게실 앞.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자신 앞으로 생겨날 설레임 같은 것을 미리 짐작해보며 서 있었을 그 여자.&amp;nbsp;&lt;/p&gt;&lt;p&gt;나는 가끔 생각한다. 거기 부천근처. 화가와 시인을 꿈꾸던 스무살의 청년 둘. &amp;nbsp;얼굴이 유난히 희던 여공. 내 지나온 날의 한 때.&amp;nbsp;&lt;/p&gt;&lt;p&gt;거기 전환점.&lt;br  /&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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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에 관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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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8-27T16:16:16+09:00</published>
      <updated>2009-10-11T08:31:57+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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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빈곤 아동을 대상으로 글쓰기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 반 아이들이 나를 외계인선생님이라고 불렀다. &lt;br  /&gt;처음 몇번 늦었을 때 왜 늦었냐는 추궁에 농담으로 답 하느라&amp;nbsp;&lt;/p&gt;&lt;p&gt;-멀리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 오느라 늦었어&lt;/p&gt;&lt;p&gt;그렇게 말한 게 시작이었다.&amp;nbsp;&lt;/p&gt;&lt;p&gt;그 후로 아이들은 나를 볼 때마다 선생님 요번엔 외계에서 누굴 만났어요 하는 식으로 장난을 걸어오곤 했다. &lt;br  /&gt;나의 대답은 그날의 상황에 따라 손오공, 아톰 등 만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슈퍼맨일 때도 있었다.&lt;/p&gt;&lt;p&gt;손오공을 만났다고 하면&amp;nbsp;&lt;/p&gt;&lt;p&gt;-와, 손오공하고 싸워서 이겼어요?&amp;nbsp;&lt;/p&gt;&lt;p&gt;이런 종류의 질문이 이어졌다.&amp;nbsp;&lt;/p&gt;&lt;p&gt;아이들도 알고 나도 알고 있듯이 그건 서로에게 놀이 수준의 대화였다. 나는 아무렇게나 지어내서 대답하고 아이들은 그것에 반응하며 크게 웃었다. 가벼운 유희였다.&lt;br  /&gt;&lt;br  /&gt;평소와 다름 없는 날이었다.&amp;nbsp;&lt;/p&gt;&lt;p&gt;아이들과 한바탕 외계인 관련 농담을 끝내고 창가쪽에 서 있을 때 1학년 아이가 다가와서는 작은 목소리로 떨며 물었다.&lt;/p&gt;&lt;p&gt;혹시 자기 아버지를 본적이 있느냐고.&lt;br  /&gt;선생님은 외계에서 모두를 만날 수 있으니 작년에 죽는 우리 아버지도 만났을 거 아니냐며.&lt;br  /&gt;&lt;br  /&gt;처음 회사에 들어가고 영업직을 맡았을 때 풍족하게 나온다는 년말 성과급을 미리 당겨서 부서 회식을 한적이 있었다.&lt;br  /&gt;오래 전의 이야기다.&amp;nbsp;&lt;br  /&gt;술에 취한 영업사원들은 이래저래 전전하다가 결국 여자가 옆에 앉는 술집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많이 마시고 취해 잠들었다가 일어나보니 장소를 알 수 없는 여관이었다. 옆에 술집 여자가 누워 있었다.&amp;nbsp;&lt;/p&gt;&lt;p&gt;&amp;nbsp;&lt;br  /&gt;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여기는 어딜까하여 두꺼운 커튼을 열었을 때 창밖으로 그해 첫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대설이었다. 내려다보이는 아침 풍경이 그야말로 절경이었다.&lt;/p&gt;&lt;p&gt;&lt;br  /&gt;&lt;/p&gt;&lt;p&gt;-저것 좀 봐. 오늘 눈이 내리네요. &amp;nbsp;저렇게 가득.&lt;/p&gt;&lt;p&gt;&lt;br  /&gt;어느 새 내 옆에 선 여자가 부끄러움도 없이 소리쳤다. 여자는 들떠 있었다.&lt;br  /&gt;바쁘지 않으면 같이 조금 걸어요. 거절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amp;nbsp;&lt;/p&gt;&lt;p&gt;우리는 그렇게 눈 내리는 길을 연인처럼 손잡고 걸었다.&amp;nbsp;&lt;/p&gt;&lt;p&gt;어디서 만났는지 중요하지 않고 더이상 만날 것도 아니면서 그냥 그 내리는 눈길 속에서 서로를 감사해하며 오전 내내 걸었다. &amp;nbsp;&lt;/p&gt;&lt;p&gt;&lt;br  /&gt;연락처도 없이 헤어지려고 하는데 여자가 쪽지를 하나 건냈다. 손 흔들고 택시 안에서 펴보니 식당에서 얻은 메모지에 삐뚤한 글씨로 써 있다. 오늘 내 생일이예요. 바쁘실 텐데 아침 내내 같이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경숙.&lt;br  /&gt;&lt;br  /&gt;이 쪽지를 언제 썼을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감상이 아니다. 그냥 삶과 솔직하게 만나게 되는 순간에 눈이 젖는 것.&amp;nbsp;&lt;/p&gt;&lt;p&gt;둔황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여섯 살 한족 꼬마애. 이틀통안 나랑 놀다 정이 들었는지 중간에 먼저 내려야할 때 헤어지기 싫다며 기차가 떠내려가도록 우는 게 아닌가.&lt;br  /&gt;다음에 꼭 만나자 손 잡아 약속해줄 때 울던 얼굴이 웃었다가 다시 울었다가 하면서 잘 알아 듣지 못하겠는 중국어로 내게 몇번이나 동네 이름을 불러주던 그 아이.&lt;br  /&gt;&lt;br  /&gt;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눈물이 없고 &lt;br  /&gt;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그 아이는 펑펑 우는 것.&lt;br  /&gt;&lt;br  /&gt;그런 것.&lt;br  /&gt;&lt;br  /&gt;자신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은 아이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눈만 젖어가는 내게 다시 말했다.&lt;br  /&gt;다음에 보게되면 꼭 전해달라고.&amp;nbsp;&lt;/p&gt;&lt;p&gt;&lt;br  /&gt;종철이는 밥도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있다고. 아버지도 거기서 건강하시라고. &lt;br  /&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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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첫 발신자를 생각해보는 아침</title>
      <id>http://www.soulpenis.com/505</id>
      <published>2009-08-27T16:15:11+09:00</published>
      <updated>2010-06-14T13:31:49+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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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soulpenis.com/files/attach/images/93/505/3357_5033_5724_700.jpg&quot; alt=&quot;3357_5033_5724_700.jpg&quot; title=&quot;3357_5033_5724_700.jpg&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467&quot; style=&quot;&quot; /&gt; &amp;nbsp;&lt;/p&gt;
&lt;p&gt;이마는 아버지를 닮았고 코와 턱은 어머니를 닮았다. 목소리는 아버지에게서 왔고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와 같다. &lt;br  /&gt;손가락 마디는 굵어 아버지와 같고 손톱은 어머니처럼 그 끝이 뭉툭하게 둥글다.&lt;br  /&gt;&lt;br  /&gt;가만히 보면 마음과 성격도 그런 것. 어떤 때 나는 어머니처럼 조용하고 때로 아버지처럼 유쾌하다. 문장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 거대담론보다 소소한 것들에게 마음의 대부분을 할애할 때, 또는 &amp;nbsp;식물에게 이유없이 끌리는 내 모습을 볼때,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lt;br  /&gt;&lt;br  /&gt;말하자면 나는 그냥 섞여 있는 것이다. &lt;br  /&gt;절반씩 섞여 있는 것.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할아버지 앞엔 다시 또다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것. &lt;br  /&gt;&lt;br  /&gt;가끔 내 얼굴이 찍힌 사진을 보거나 어느 밤 기대하지 않았는데 문득 거울과 만날 때 내가 보는 내 얼굴은 내게 말을 건네온다.&lt;br  /&gt;너는 최초의 인간에게서부터 흘러내려온 물결의 한 지점. 욕심내지 않고 딱 절반씩만 받아와 그만큼만 다시 건네주면서 걸어온 긴 여행의 한 때.&lt;br  /&gt;&lt;br  /&gt;이마에 손을 얹고 둥근 뼈의 미세한 굴곡을 만져본다.&lt;br  /&gt;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게로 이어진 내 앞의 모든 인류가 조금씩 관여하며 만든 것.&lt;br  /&gt;&lt;br  /&gt;마음 또한 그러해서 퇴근길 어느 나무 앞에 서 있을 때 내 마음의 이 문양은 어디에서부터 수신되어 흘러온 것일까.&lt;/p&gt;
&lt;p&gt;누구와 누가 운명으로 만나 이어지면서 이렇게 반죽해놓은 것일까.&lt;br  /&gt;&lt;br  /&gt;어제는 만유의 모든 생명들이 그렇게 감탄이었고 오늘은 늦게 일어나 공복인채 그냥 오래 앉아 있는다. &lt;br  /&gt;오후의 약속을 위해 물 한잔 마시고 또 몸과 마음을 움직여봐야 할 것. &lt;br  /&gt;약속 장소로 가면서 지하철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볼 것만 같은 예감.&lt;/p&gt;
&lt;p&gt;&lt;br  /&gt;그 오랜 편지를 읽으며, 첫 발신자를 생각해 볼 것만 같은 아침이다.&lt;br  /&gt;&lt;!--&quot;&lt;--&gt;&lt;/--&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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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체 게바라</title>
      <id>http://www.soulpenis.com/503</id>
      <published>2009-08-27T16:14:42+09:00</published>
      <updated>2010-02-08T08:59:32+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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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소개팅에서 아주 멋진 남자를 만났는데 그와 자연스럽게 서점에 들러서 책을 보다가 그 남자가 [체 게바라]를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끈을 끊었다는 친구가 있다. &lt;br  /&gt;잘한 일이다. &lt;br  /&gt;물론 사람은 각자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나의 화살촉이 향하는 정신적 방향과 그가 지향하는 세계는 다를 수 있고 &lt;br  /&gt;내가 목숨처럼 받들고 있는 어떤 것이 그에게는 &lt;br  /&gt;&quot;그게뭔데?&quot; 하는 질문만 나오는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lt;br  /&gt;그 차이는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lt;br  /&gt;&lt;br  /&gt;하지만 체 게바라[Guevara,1928.6.14~1967.10] 를 모르는 이유 때문에 연을 끊은 것은 잘한 일이다. &lt;br  /&gt;아니 그것이 [체 게바라]일 수도 있고 [드뷔시]일 수도 있고 [봉산탈춤]일 수도 있겠으나, &lt;br  /&gt;나는 어떤 것을 모르는 사람, 혹은 그것에 대해 주관이 없는 사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겠다 하는 자기 기준이 있고 &lt;br  /&gt;그 기준에 맞춰 사람을 선별하면서 살아가는 태도는 잘한 일이다. &lt;br  /&gt;한두 번 만날 사이가 아니라면 &lt;br  /&gt;그 기준은 더 냉철하게 가져가야 할 것이다. &lt;br  /&gt;&lt;br  /&gt;그 [기준]이 친구에겐 체 게바라였을 것이다. &lt;br  /&gt;그것을 모른다는 것으로 상대방의 전부를 이미 보아 버렸다. &lt;br  /&gt;그리고는 가차없이 그와 연을 끊어버린 것. &lt;br  /&gt;&lt;br  /&gt;다행히 나는 체게바라를 알고 있었고, 덕분에 친구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lt;br  /&gt;&lt;br  /&gt;나에게도 분명 그와 같은 기준이 있을 것이다. &lt;br  /&gt;찾아볼까? &lt;br  /&gt;&lt;br  /&gt;또 부질없는 생각들로 밤이 깊다. &lt;br  /&gt;&lt;!--&quot;&lt;--&gt;&lt;/--&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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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신 얼굴에게서 나에게로 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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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8-27T15:31:42+09:00</published>
      <updated>2009-09-13T21:38:59+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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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br  /&gt;&lt;/p&gt;&lt;p&gt;받지 않으셨지만, 아침 일찍 전화해서 미안해요. 가끔 그런 때가 있잖아요.&amp;nbsp; 마음 안에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 들어차서 숨이 막혀오는 그런 순간들요. 그래서 방을 서성이고 옷을 정리하고 그릇들을 꺼내 다시 닦고 창을 열어 찬 공기를 맞았는데도 마음이 조금도 가벼워 지지 않는 순간들 말이예요. 오늘 아침에 그랬어요. 그래서 전화했었어요. 미안해요.&lt;/p&gt;&lt;p&gt;&lt;br  /&gt;받지 않았지만, 부재중 전화 목록에 적혀있을 내 이름, 그게 마치 내 연한 마음 상태를 당신께 고백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언제나 고백은 가슴을 후련하게 하잖아요. 온전히 다 풀린것은 아니지만 마음 속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고마워요.&lt;br  /&gt;&amp;nbsp;&lt;br  /&gt;우리는 왜 만나게되고 왜 헤어지게 되었는가 그걸 생각해요. 당신을 처음 보게된 날, 그 모임에 조금 늦게 온 당신은 빈자리를 찾다가 제 앞에 정면으로 앉게되었잖아요.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예요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과 섞여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당신이 자세를 고쳐 정면을 바라봤을 때, 당신도 봤을거예요. 거기 정면을 향해 몸을 고쳐 앉은 저를요.&lt;br  /&gt;아마 그래서였을거예요.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었나봐요. 처음으로 본 것이 정면이었던 당신. 숨길 수 없는 정면을 보던 그 짧은 순간. 그 순간 말이예요. &lt;br  /&gt;&lt;br  /&gt;그리고 그날은 아무일 없이 흘러갔고 그 다음 며칠도 아무일 없이 흘러갔었죠. 마음 속의 씨앗은 부풀어오르는데 저도 그걸 모르고 당신도 모른채 말이예요.&lt;br  /&gt;&lt;br  /&gt;그 며칠동안 마음 속에 부풀어 오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된 것은 다시 당신을 정면으로 보던 날이었어요. 당신이 전화했었죠. 비가 많이 내리던 그 날 말이예요. 저는 내 마음 속 부풀어오르던 것이 당신이었구나 그걸 그때 알았어요. 가면 말해야겠구나 했죠.&lt;br  /&gt;&lt;br  /&gt;그때 말하지는 않았어요. 당신이 가져온 것, 당신의 가슴 속에서 부풀어오르던 것 역시 나와 같은 것이었구나, 그것을 그저 그냥 알게 되었거든요. 다시 당신을 정면으로 마주앉았던 그때요. &lt;br  /&gt;&lt;br  /&gt;당신과 만나면서 저는 자주 당신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어요. 닮고 싶었던 건가봐요.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당신 얼굴의 형상이 제 얼굴로 조금씩 건너오고 내 얼굴이 당신의 얼굴로 조금씩 건너갈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당신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집으로와서는 그걸 확인하려고 거울을 보곤 했어요. &lt;br  /&gt;&lt;br  /&gt;당신 얼굴은 어느 정도 내 얼굴로 왔을 거예요. 사랑은 그런것이죠. 피의 섞임 없이 얼굴을 닮게 하는 것. 모든 꽃들이 서로 닮은 것은 서로 곁에서 오래 바라보며 사랑했기 때문, 모든 구름, 모든 나무, 모든 돌, 모든 새들도 마찬가지예요. 가만히 보면 모두 서로 닮았잖아요. 태초엔 모두 달랐을거예요. 서로 바라보면서 사랑하게 되자 얼굴이 조금씩 상대에게 건너간 것일 거예요.&lt;br  /&gt;&lt;br  /&gt;내 얼굴이 온전히 당신 얼굴이 되지 못하고 우리는 헤어졌지만, 당신에게서 온 그것을 제 얼굴에서 지우지는 않을거예요. 내 얼굴이 당신으로 인하여 그만큼 아름다워졌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보이니까요.&lt;br  /&gt;&lt;br  /&gt;오늘 아침은 이상해요. 하지 않던 이야기, 숨겼던 말들을 하게 되네요. 이제 힘 내서 밖으로 나가볼려고 해요. 당신에게서 내게 건너온 얼굴을 갖고 좀 걸어보려고요.&amp;nbsp;&lt;/p&gt;&lt;p&gt;세상 사람들 얼굴도 바라볼 거예요. 저 얼굴에겐 어떤 사랑의 얼굴이 왔을까. 이 꽃과 이 구름과 이 빗물은 어떤 꽃과 구름과 빗물을 사랑해서 서로 얼굴이 닮은 것일까&amp;nbsp;&lt;/p&gt;&lt;p&gt;&lt;br  /&gt;&lt;/p&gt;&lt;p&gt;어떤 얼굴은 오고 어떤 얼굴은 흔적만 남긴 것일까 그걸 생각하면서요. &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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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간결하고 서러운 문장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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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8-27T15:09:25+09:00</published>
      <updated>2009-09-15T17:31:3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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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아무렇지도 않은데&lt;br  /&gt;견딜 수 없는 날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기분이 들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날이 있는 것처럼.&lt;br  /&gt;&lt;br  /&gt;어쩌면 나의 심리적상태나 감정 들은 내가 만들어내는 종속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들 자체로 생명력이 있어 &lt;br  /&gt;내 안에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인지도 모른다.&lt;br  /&gt;나와 공생하고 있다 할까?&lt;br  /&gt;&lt;br  /&gt;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가라 앉아 있었다. 이유가 있었을까? 이유는 없다. 물풀이 유월에 자라나듯, 그냥 내 안에서 감정들이 자라난 것 뿐이다. 인정하고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황홀함에 겨워 춤추는 것처럼 지금 내 안에 있는 이 낮고 음울한 감정들도 기뻐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름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느끼는 내가 주체이고 감정들은 하위의 종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lt;br  /&gt;&lt;br  /&gt;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비로서 빙점, 혹은 비등점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일테니까 말이다.&lt;br  /&gt;&lt;br  /&gt;오늘 아침 내 안에 생겨난 감정들은 그냥 두고, 내가 할 일은 내 육체에게 한끼의 식사를 대접하고 심호흡 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두는 것 뿐이다. &lt;br  /&gt;&lt;br  /&gt;그리고 가만히&lt;br  /&gt;&apos;모든 것은 사라진다&apos; 는 이 간결하고 서러운 문장을 분명하게 유한(有限)인 내 육체와 정신에게&lt;br  /&gt;속삭여주는 일 뿐이다.&lt;br  /&gt;&lt;br  /&gt;그것 뿐이다. &lt;!--&quot;&lt;--&gt;&lt;br  /&gt;&lt;/--&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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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슬픔의 순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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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8-27T15:04:16+09:00</published>
      <updated>2010-05-24T10:02:3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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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지구멀미</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p&gt;
&lt;p&gt;기르던 짐승이 죽어도&amp;nbsp;아버지는 냉정하다.&lt;br  /&gt;먹을 수 있는 것은 그 고기를 끊어 동네에 나눠 주거나 직접 끼니로 드시고&lt;br  /&gt;그럴 수 없는 것은 &lt;br  /&gt;땅을 파고 유실수 아래 묻어 거름으로 쓸 뿐이다.&lt;br  /&gt;&lt;br  /&gt;&quot;이 놈이 그래도 작년까지 농사를 짓던 놈인께 고기는 그리 질기지 않을 거여......처음엔 농삿일 가르치느라 몇 해를 이 놈하고 나하고......&quot;&lt;br  /&gt;&lt;br  /&gt;동네에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amp;nbsp;아버지는 시원하다는 듯 손바닥을 탁탁 치고는&amp;nbsp;날이 무뎌진 것 같다며 수돗가에 앉아 오래도록 농기구를 손질하셨다.&lt;br  /&gt;&lt;br  /&gt;&quot;숫돌을 물에 담궈두는게 중요하지, 물에 절어야 쇠가 다치지 않고 날만 서거든, 벼린 날 위로 더낀 녹과 상처만 쓸어내야 하는 법&quot;&lt;br  /&gt;&lt;br  /&gt;나는 평상에 앉아 아버지의 등을 본다.&lt;br  /&gt;&lt;br  /&gt;아버지와 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오래도록 놀았던 순한 짐승.&lt;br  /&gt;이랴, 이랴, 아버지가 말 걸면&lt;br  /&gt;음머, 음메, 하고 대답하던 순한 짐승.&lt;br  /&gt;&lt;br  /&gt;&lt;/p&gt;
&lt;p&gt;사람과 말하듯&lt;br  /&gt;&lt;br  /&gt;&quot;집에 가야지&quot;, &quot;이제 그만 먹어라 이놈아&quot;, &quot;조금만 더 힘을 쓰라&quot;&lt;br  /&gt;&lt;br  /&gt;그렇게 친구처럼 말 건네던 늙은 소가 죽은 것.&lt;br  /&gt;&lt;br  /&gt;그러나 아버지는 오늘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lt;br  /&gt;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리시고&lt;br  /&gt;아무렇지도 않게 몇마디 농담을 건네며 기르던 짐승의 고기를 잘라 동네에 나누어주었을 뿐.&lt;br  /&gt;&lt;br  /&gt;&lt;br  /&gt;나는 평상에 앉아 아버지의 야윈 등을 본다.&lt;br  /&gt;&lt;br  /&gt;어제&amp;nbsp;죽어가는 그 짐승 앞에 말 없이 오래 앉으셨다가 일어서며&lt;br  /&gt;&lt;br  /&gt;&quot;야, 이 놈이 정말 죽으려나보다, 이 놈이, 정말......&quot;&lt;br  /&gt;&lt;br  /&gt;그렇게 떨리고 흐리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각해낸다. 오래도록 그 문장을 생각한다.&lt;br  /&gt;&lt;br  /&gt;&lt;br  /&gt;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amp;nbsp;나는 아직&amp;nbsp;그 &apos;슬픔의 순서&apos;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lt;/p&gt;
&lt;p&gt;죽기 전에 한없이 슬퍼하고 죽은 뒤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lt;/p&gt;
&lt;p&gt;또는 그렇게 보여지는 것.&lt;br  /&gt;&lt;br  /&gt;아직은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나이 이다.&lt;/p&gt;
&lt;p&gt;(2001년)&lt;!--&quot;&lt;--&gt;&lt;br  /&gt;&lt;/--&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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