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전환점

2009.08.27 16:17:30

 

부천역 근처 선풍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 스무살 무렵.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다. 모집 공고를 보고 전화를 하였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소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고 가끔 뜨거웠다는 것이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멈춰 있으면 급속히 썩어 갈 것처럼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겨우 쇼핑백 하나 정도의 짐을 들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작업복을 입어야 했고 현장에선 안전화를 신었기에 별다른 짐은 필요 없었다. 칫솔과 수건, 외출복, 운동복 하나, 내의 몇 개 그리고 꼭 지녀야 했던 책 몇 권이 전부였다.

기숙사는 군대식 상하 관계로 운영 되었다. 각 방마다 일곱 명 정도가 묵고 나이와 공장의 직급으로 서열을 정했다. 가장 높은 서열이 창가 텔레비전 쪽에 눕고 그 뒤로 방의 입구까지 차례로 누웠다.  
나는 막내였다. 막내는 그 방의 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다. 청소와 심부름과 굴종과 그에 따르는 적당한 비굴함까지 막내의 몫이었다.
아침마다 엎드려 방을 닦고  가습기의 물을 채우고 입구의 슬리퍼를 정리했다.  치약과 등기 우편물을 관리실에서 대신 받아 왔고 주말이면 창가의 화분과 선배들의 빨래를 옥상 빛 좋은 곳에 옮겼다.  외출을 준비하는 선배들의 구두를 닦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이 나의 몫이었다. 나는 거기서 막내였다.  
때론 부탁을 가장한 명령들과  '니깐 놈이 뭘 알아' 라는 조소와 무시들도 있었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견뎠다.  나는 막내였고 공장을 나서면 갈 곳이 없었다.    

도열하여 아침 체조를 마친 뒤 작업 라인에 서면 일정한 속도로 반조립 상태의 선풍기가 흘러 왔다.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부터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까지. 그리고 잔업의 두 시간 동안 그 흐름은 끝이 없었다.
나는 선풍기 뒷 머리 쪽을 몸체에 고정하는 일을 맡았다. 압축 공기로 작동하는 전동 드라이버를 사용해 4개의 볼트를 끼우고 선풍기를 다시 라인에 올려 놓는 일이었다.  뒷 라인의 작업자는 내가 고정시켜 둔 부분에 플라스틱 뚜껑을 덮었다. 라인은 뒤로 끝 없이 흘러 갔다.  
잘 안 되었다. 잘 안 될 때 라인은 뺨을 때리 듯 빨랐다. 미리 쥐고 있던 볼트를 손가락으로 잡고 코일과 코일 사이 좁은 틈에 밀어 넣는 게 요령이었다. 그걸 알지 못했을 때 라인의 속도 보다 내가 느렸다. 조립하지 못한 선풍기들이 짐처럼 바닥에 쌓였다. 바닥에 선풍기가 하나 내려 온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 당 조립 갯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려놓은 선풍기가 다섯대를 넘어서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작업반장이 달려와 곁에서 도왔다. 도우면서 꾸짖었다. 네가 밀리면 너의 뒤 모든 라인이 쉬게 된다. 그걸 내가 도와 두대를 한번에 라인에 올려 놓으면 뒤의 모든 사람들이 바빠진다. 작업 반장의 도움은 도움이 아니라 경고의 의미였다. 나는 경고를 자주 받았다. 그러나 익숙해져갔다. 눈치로 요령들을 터득했다. 익숙해 지자 숨을 쉴 수 있었다. 라인의 속도보다 내가 빨랐다. 작업 하면서 농담도 할 수 있었다.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몇개월이 흘러갔다.
 
2주는 낮 근무 1주는 야간 근무였다. 야간 근무 땐 새벽 3시부터 1시간 동안 휴식 시간이었다. 뱀처럼 기어 가던 라인이 정지하면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눕곤 했다. 저것은 오리온, 저것은 북극성, 나는 스무 살, 드러난 뼈같은 별들. 그 휴식은 독백들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등이 차가웠으므로 바닥에 폐박스를 깔고 덮었다. 그게 따뜻했다. 사람 같았다.
한달 만근으로 일하고 삼십 여 만원을 받았다.
 
휴일은 있었다. 외출증을 작성하고 나서면 공장 밖의 빛은 따뜻하고 좋았다. 갈 곳이 없었으므로 걸었다. 그 수퍼 옆. 낙서로 시작되는 그 골목을 시작으로 컨베이어 벨트 라인처럼 나는 걸었다. 뺨을 때리 듯 빠르게. 때론 뱀 처럼 천천히.
골목은 골목과 닿아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다시 내게 끝없이 선풍기들은 흘러 올 것...그걸 생각하며 걸었다. 그리고 그걸 잊으면서 걸었다. 어디로 향하지 않고 흘러가지도 않은 채 라인 앞에 비석처럼 서 있어야 하는 내 삶. 그 멈춤을 만회하려는 듯 걸었다. 휴일이면 아프게 걸었다.

어느 날이었다. 오전 작업을 끝내고 식당 입구에 들어 섰을 때였다. 한 여자가 있었다. 관례처럼 남자와 여자가 다른 줄을 서서 식사를 기다렸는데 건너 편 쪽 여자에게서 빛이 흘렀다. 얼굴이 환했다. 눈이 맑았다.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표정과 외형 속에 숨긴 듯 보였다. 숨겼는데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내게만 보이는 그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아니었다. 뒤에 서 있던 동료가 내 어깨를 툭 쳤던 것이다. 그가 그 여자를 가르켰다. 그리고는 내게 동의를 구해 왔다.
삼개월 전부터 기숙사 같은 방에서 함께 막내로 지내던 친구였다.
야, 저 여자 좀 봐.

긴 생산라인의 중간에 서서 하루 종일 볼트를 끼워 넣거나 사출기가 쿵하고 내려 오면 거기 찍혀 나온 뜨거운 플라스틱 선풍기 날개를 박스에 넣는 일. 시키면 방을 닦고 흘러오면 조립하는 일. 그런 일들이 전부였던 우리들에게 그 여자와 그 여자에 대한 인식은 생경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식판에 밥을 담고 반찬을 넣고 빈 식탁에 앉으면서 우리가 하는 일은 두가지였다. 그 여자를 보는 일. 마음이 오랜만에 요동치는 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그 여자에게 다가서기로 결심했다.
 
그 여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수소문하여 어느 라인에 근무하고 있는지도 알아냈다. 모터 생산파트. 자석 위에 코일을 감는 쪽. 생산 3라인. 그러니까 내가 조립하고 있는 그 모터 뭉치를 생산하는 쪽이었다. 나는 그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그때까지 내가 조립했던 그 것. 죽도록 싫었던 그 부품. 혹시 그녀가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일이 즐거워졌다. 조립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일과가 끝나면 동료와 나는 어떤 방법을 통하여 그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 했다.  고민은 길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등장했고 모든 방법이 부정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 고민의 시간은 씨앗의 발아처럼 젊은 우리의 내면을 한없이 부풀렸다.

우리는 젊어서 순진했고 세상 물정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므로 순백할 수 있었다. 순백으로 거기에 매달렸다. 내가 골목을 미친듯이 걸었던 것과 그 여자에게로의 몰입은 어쩌면 비슷한 종류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부품 같은 시절에 부품이 아닌, 피어나는 꽃, 부는 바람 같은 일을 우리는 찾아 냈던 것이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친구가 그 여자의 얼굴을 실물 크기로 그려서 선물 하기로 했다. 입술은 그리지 말고 립스틱으로 찍어달라고 하자, 내가 제안했다. 언제 마추칠지 모르는 점심식사. 그리고 휴게실. 그곳을 우리는 서성이며 그 여자 와의 우연을 기다렸다. 가끔은 스쳐 지나갔다. 우연을 가장하여 옆 테이블에 앉기도 했다. 관심없는 타인처럼 그렇게 앉아 그녀가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훔쳐 보았다. 그런 순간들은 행운처럼 왔다. 기다려서 왔다.
친구는 그 여자의 얼굴을 스치며 들여다보고 그것을 기억했다가 그림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확인하려고 그 여자와 우연히 만날 순간들을 기다렸다.

그림이 완성되는데 2주 가까이 걸렸다. 그림은 완성되었다. 실물과 같았다. 아름다운 여자였으므로 그림도 아름다웠다. 선들은 세밀했고 사실적이었다.
내가 가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당신은 참 예뻐요. 그래서 그렸으나 차마 입술은 그릴 수 없었어요. 여기 입술을 찍어주세요. 유치한 연극의 대사와도 같은 그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여 연습했다.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열흘이 더 지나서야 그림을 건넬 수 있었다.

"너무 예쁘셔서 저희가 그쪽 얼굴을 그렸봤습니다. 그런데 입술은 차마 그릴 수 없었고요. 여기 좀 찍어 주시면"
 
나는 떨려서 간단히 말했다.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필 마음의 겨를이 없었다. 다음 휴일 몇시 여기서 기다릴께요. 그렇게만 말하고 동료와 나는 뒤돌아 섰다. 그리고 뛰쳐나왔다.
 
그 며칠, 그러니까 여자에게 그림을 건네고 뛰어 온 며칠 동안 우리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그것은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응답에 대한 기대 만은 아니었다. 응답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부풀어 올랐다. 그 여자와 친해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휴일이면 소풍을 가고...단풍나무 아래 가서 앉고 나는 편지를 쓰고...
 
그런 것들은 우리가 오랜 동안 잊고 지내 온 말이었다. 꿈이라는 말, 낙엽과 향기와 비와 구름이라는 말, 새옷과 근사함과 내일이라는 말, 그런 말들이 우리에게 다시 생겨났던 것이다.
공장에 가져와서 오래도록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펼쳐 읽었고 친구는 계속해서 그 여자의 얼굴을 그렸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꿈이 화가라고 내게 말해 왔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답했다.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생각했다. 그는 물감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그에게 내 꿈을 고백 처럼 말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리고는 오래 고개 끄덕여줬다.
우리가 잊고 있었으나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고 우리는 그것으로 부풀어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순박한 청년이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 여자도 생산 라인에 로봇팔을 대신하여 서 있던 여공의 하나일 뿐이었다. 취미로 여공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에도 삶은 정박이었을 것이며 미래는 사치였을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자신에게 조금은 의외의 일이 생겨 난 것이고 그도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조금은 부풀었을 것이다. 볼트와 너트처럼 줄지어 오는 생산라인의 어떤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 뛰고 피고 땀차 오는 그런 것. 그것을 그 여자도 느꼈을 것이다.

입술을 찍어달라고 그림을 건넨 뒤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여자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고개 돌렸고 주위의 친구들은 무엇이 좋은지 킥킥 웃었다. 잘 되었구나. 우리 둘은 생각하고 우리도 웃었다. 여자도 기뻐하는구나. 잘 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 여자와의 약속 하루 전날 저녁. 내일의 약속을 위해 새 남방과 바지를 사서 들고 들어 온 우리를 기숙사 고참이 옥상으로 불러 냈다. 서른 정도 먹었을 그는 작업 반장이었다. 지갑을 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너네 둘이 가져간 것을 다 안다는 것. 목격자도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 너희 둘, 매일 옥상에 올라가서 수근거렸지. 처음부터 이상했어. 보니, 보란 듯이 옷도 샀더구만.  다 알고 있으니까 가져와. 이것들이 남의 돈 훔쳐서 옷을 사?"

아니었다. 아니 었으므로 아니라고 말하자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자백하라고 그가 말했다. 말은 비웃음을 타고 들려왔다. 억울했다.

"우리는 겨우 지갑 따위를 훔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감정이 섞여 있는 음성이었다. 억울해서 내뱉은 말이었다.

"허"

작업반장은 황당한 듯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내게 너희들은 지갑 따위 훔칠 놈들로 보인다. 너네들은, 너네 자신을 그렇게 모르겠어. 너희들은 한마디로..."

그는 말을 끊고 잠시 침묵하더니 나의 얼굴을 주먹으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너희들은...그는 표현할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 다는 듯 그 말을 반복하며 내 얼굴과 가슴과 어깨 곳곳을 툭툭 쳤다. 그 말이 생각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듯 보였다.  아프지 않게 때리는 것이어서 더 치욕이었다.

나는 어쩌지 못하고 그의 조롱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몇개월 동안 지속된 위계질서에 익숙해진 탓도 있었고 힘으로는 그를 어쩌지 못한다는 패배감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 우리의 존재 위치를 규정하는 그의 다음 말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한마디로' 뒤에 나올 그 말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묘한 궁금증도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것을 즉시 부정하고 싶었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래서 기다렸다.  

나의 곳곳을 툭툭 치던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래 너희들은 말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이 어떤 존재냐 하면은 한마디로 말해서"

그때였다. 옆에서 묵묵히 고개 숙이고 있던 동료가 갑자기 짐승처럼 소리를 지렀다.  소리침과 동시에 주먹을 뻗어 방심하고 있던 작업 반장의 얼굴을 쳤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어서 작업반장도 어쩌지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이 개새끼, 뭐라고. 우리가 뭐?. 왜 우리를 니가 정의 하는데"

동료는 소리쳐 울분하며 그 선배의 얼굴을 계속 쳐 댔다. 얼굴에 주먹이 닿아 둔탁한 소리들을 냈다. 그치질 않았다. 입술이 터져 옥상 푸른 바닥에 피가 툭툭 떨어져내렸다. 작업반장은 대응하지 못했다. 아, 이, 어, 너, 등의 단음 들만 내 뱉을 뿐이었다.

동료는 참지 않았다. 나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넘어진 작업반장을 무참히 밟았다.

"너는 내가 오늘 죽인다. 죽이고 끝낸다. 나는 도둑놈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이원우'다"

동료는 빨래 건조대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던 벽돌을 들어 넘어져 신음하는 작업반장의 등을 내리 쳤다.

그날 우리는 그 기숙사를 나왔다. 짐도 다 챙지지 못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눈에 보이는 것들만 챙겨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 거리를 달려 안심이 되었을 때 허기진 배를 채우며 그와 처음으로 술 한잔을 마셨다. 동료는 그 여자를 그린 그림들도 갖고 나오지 못했다고 내게 말했다. 눈물이 글썽였다. 여기,  살면서 잊지 않겠다고 내가 말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잘했다고 대답해줬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버스를 타고 서울 친척집으로 갔고 동료는 시골로 내려갔다. 그 후로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다음 날 그 여자는 기다렸을 것이다. 우리가 그려 준 그림에 입술 자욱 찍고서, 몇명의 동료들과 기다렸을 것이다. 청년 둘은 하나의 시대를 끝내고 다음 시대로 건너 가느라 거기 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여자에게 그림을 건네며 본 것은 희망이라는 말이었다. 그것은 우리들 내면으로 들어온 씨앗이었다. 미래라는 말. 그것이었다. 

우연히 일어난 일. 생에서 스쳐가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하나지만 그것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되고 있다. 그 순간이 내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기 때문이다.  삶은 그때 내 길을 전환 시켜 주려고 했었고 거기 그 아름다운 여자, 지금은 이름과 얼굴과 모든 것이 생각나지 않는 그 여자를 등장 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 여자에게도 그 순간이 전환점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 조립공의 삶이 저급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자신의 아름다움. 조립공이 아니라 그 자신, 그 존재 자체로서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그림에 입술을 찍으며 알게 되었기를 바란다.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려지는 그 풍경이 있다. 그 휴게실 앞.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 자신 앞으로 생겨날 설레임 같은 것을 미리 짐작해보며 서 있었을 그 여자. 

나는 가끔 생각한다. 거기 부천근처. 화가와 시인을 꿈꾸던 스무살의 청년 둘.  얼굴이 유난히 희던 여공. 내 지나온 날의 한 때. 

거기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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