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지 않으셨지만, 아침 일찍 전화해서 미안해요. 가끔 그런 때가 있잖아요.  마음 안에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 들어차서 숨이 막혀오는 그런 순간들요. 그래서 방을 서성이고 옷을 정리하고 그릇들을 꺼내 다시 닦고 창을 열어 찬 공기를 맞았는데도 마음이 조금도 가벼워 지지 않는 순간들 말이예요. 오늘 아침에 그랬어요. 그래서 전화했었어요. 미안해요.


받지 않았지만, 부재중 전화 목록에 적혀있을 내 이름, 그게 마치 내 연한 마음 상태를 당신께 고백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언제나 고백은 가슴을 후련하게 하잖아요. 온전히 다 풀린것은 아니지만 마음 속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고마워요.
 
우리는 왜 만나게되고 왜 헤어지게 되었는가 그걸 생각해요. 당신을 처음 보게된 날, 그 모임에 조금 늦게 온 당신은 빈자리를 찾다가 제 앞에 정면으로 앉게되었잖아요.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누구예요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과 섞여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당신이 자세를 고쳐 정면을 바라봤을 때, 당신도 봤을거예요. 거기 정면을 향해 몸을 고쳐 앉은 저를요.
아마 그래서였을거예요.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었나봐요. 처음으로 본 것이 정면이었던 당신. 숨길 수 없는 정면을 보던 그 짧은 순간. 그 순간 말이예요.

그리고 그날은 아무일 없이 흘러갔고 그 다음 며칠도 아무일 없이 흘러갔었죠. 마음 속의 씨앗은 부풀어오르는데 저도 그걸 모르고 당신도 모른채 말이예요.

그 며칠동안 마음 속에 부풀어 오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된 것은 다시 당신을 정면으로 보던 날이었어요. 당신이 전화했었죠. 비가 많이 내리던 그 날 말이예요. 저는 내 마음 속 부풀어오르던 것이 당신이었구나 그걸 그때 알았어요. 가면 말해야겠구나 했죠.

그때 말하지는 않았어요. 당신이 가져온 것, 당신의 가슴 속에서 부풀어오르던 것 역시 나와 같은 것이었구나, 그것을 그저 그냥 알게 되었거든요. 다시 당신을 정면으로 마주앉았던 그때요.

당신과 만나면서 저는 자주 당신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어요. 닮고 싶었던 건가봐요.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당신 얼굴의 형상이 제 얼굴로 조금씩 건너오고 내 얼굴이 당신의 얼굴로 조금씩 건너갈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당신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집으로와서는 그걸 확인하려고 거울을 보곤 했어요.

당신 얼굴은 어느 정도 내 얼굴로 왔을 거예요. 사랑은 그런것이죠. 피의 섞임 없이 얼굴을 닮게 하는 것. 모든 꽃들이 서로 닮은 것은 서로 곁에서 오래 바라보며 사랑했기 때문, 모든 구름, 모든 나무, 모든 돌, 모든 새들도 마찬가지예요. 가만히 보면 모두 서로 닮았잖아요. 태초엔 모두 달랐을거예요. 서로 바라보면서 사랑하게 되자 얼굴이 조금씩 상대에게 건너간 것일 거예요.

내 얼굴이 온전히 당신 얼굴이 되지 못하고 우리는 헤어졌지만, 당신에게서 온 그것을 제 얼굴에서 지우지는 않을거예요. 내 얼굴이 당신으로 인하여 그만큼 아름다워졌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보이니까요.

오늘 아침은 이상해요. 하지 않던 이야기, 숨겼던 말들을 하게 되네요. 이제 힘 내서 밖으로 나가볼려고 해요. 당신에게서 내게 건너온 얼굴을 갖고 좀 걸어보려고요. 

세상 사람들 얼굴도 바라볼 거예요. 저 얼굴에겐 어떤 사랑의 얼굴이 왔을까. 이 꽃과 이 구름과 이 빗물은 어떤 꽃과 구름과 빗물을 사랑해서 서로 얼굴이 닮은 것일까 


어떤 얼굴은 오고 어떤 얼굴은 흔적만 남긴 것일까 그걸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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