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르던 짐승이 죽어도 아버지는 냉정하다.
먹을 수 있는 것은 그 고기를 끊어 동네에 나눠 주거나 직접 끼니로 드시고
그럴 수 없는 것은
땅을 파고 유실수 아래 묻어 거름으로 쓸 뿐이다.
"이 놈이 그래도 작년까지 농사를 짓던 놈인께 고기는 그리 질기지 않을 거여......처음엔 농삿일 가르치느라 몇 해를 이 놈하고 나하고......"
동네에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아버지는 시원하다는 듯 손바닥을 탁탁 치고는 날이 무뎌진 것 같다며 수돗가에 앉아 오래도록 농기구를 손질하셨다.
"숫돌을 물에 담궈두는게 중요하지, 물에 절어야 쇠가 다치지 않고 날만 서거든, 벼린 날 위로 더낀 녹과 상처만 쓸어내야 하는 법"
나는 평상에 앉아 아버지의 등을 본다.
아버지와 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오래도록 놀았던 순한 짐승.
이랴, 이랴, 아버지가 말 걸면
음머, 음메, 하고 대답하던 순한 짐승.
사람과 말하듯
"집에 가야지", "이제 그만 먹어라 이놈아", "조금만 더 힘을 쓰라"
그렇게 친구처럼 말 건네던 늙은 소가 죽은 것.
그러나 아버지는 오늘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거리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몇마디 농담을 건네며 기르던 짐승의 고기를 잘라 동네에 나누어주었을 뿐.
나는 평상에 앉아 아버지의 야윈 등을 본다.
어제 죽어가는 그 짐승 앞에 말 없이 오래 앉으셨다가 일어서며
"야, 이 놈이 정말 죽으려나보다, 이 놈이, 정말......"
그렇게 떨리고 흐리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각해낸다. 오래도록 그 문장을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는 아직 그 '슬픔의 순서'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죽기 전에 한없이 슬퍼하고 죽은 뒤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
또는 그렇게 보여지는 것.
아직은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나이 이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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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조금 이해할 것 같아요.
키우던 강아지를 차례로 잃게 되었는데(대체적으로 평균수명은 살았던, 사고사였어도)
앓던 순간
죽은 순간
매장하던 순간
그리도 한동안 실컷 울다가
딱 멎었네요.
저라도 큰짐승이고 양식이면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할 것 같아요.
소용이 된다면 주검을 맞이한 그도 기꺼워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슬픔은 그 후로도 오랜동안 잔잔하게 일렁거리겠죠, 보이지 않는 가슴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