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도 별로 없던 때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면 뒤에서 '기다려야'했다.
손에 동전을 들고서 말이다.
누군가 들어가 있는 공중전화 부스 뒤에 줄을 서서 내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보면
뜻하지 않게 앞 사람이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된다.
"엄마?, 예, 저는 별일 없죠, 예, 아픈 무릎은 좀 어떠세요?, 그러게 제가 일 나가지 말고 병원에 가시라고 했잖아요!"
"저 숙희 친구 인석인데요, 죄송한데 숙희하고 통화좀 할 수 있을까요?"
"응, 나다 이제 막 도착했다, 아니 내가 더 고맙지 그래, 그래"
그때 내가 들었던 모든 통화 내용은 급하거나 진실 되거나 한 것들이었다.
"나 이제 동전 없다, 응 그래 그냥 끊어질 지도 몰라, 잘 있고, 아냐, 보고싶지..."
그렇게 동전이 없어 자리를 비워준 사람은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어디서 동전을 바꿔와 다시 뒤에 선다.
"얘, 뒷사람 기다린다 내가 좀 있다 다시 전화할께"
라고 양보하며 뒤에 선 사람과 양보와 양보를 이어가며 순서를 바꿔 오랜동안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그리움은, 먼 시외의 연인과 통화를 할 때 너무도 빨리 떨어져내리던 동전의 아쉬움 속에서 크고 깊었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사랑이었다.
어느 새벽
공중전화의 긴 통화를 하다 옛 그녀가 불러준 '아침이슬' 이란 노래.
투쟁의 거리에서 듣던 노래와는 전혀 달랐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 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그것은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그 뒤로 그녀와 헤어졌다 십년 정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얼굴도 희미하다.
아니 어떤 얼굴이 하나 그려지기는 하나 그것이 정말 그녀의 '얼굴' 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왜인가.
그 새벽 수화기로 들리던 그 노랫소리는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 신촌 전철역 지하에서 아침이슬을 다시 들었다.
레코드 가게 옆에 공중전화 부스들이 몇 개 있어서
그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또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한참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