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고 눈이 내렸다
술을 마시고 나온 일행은 잠시 세상을 잊고 눈을 올려다보았다
비는 사람을 뛰게 하고
눈은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멈춰선 우리들의 어깨에 몇송이의 눈이 가볍게 스쳤다
하늘에 가득한 순백의 궤적
그 최초 발원지를 생각해보았다
젖은 구름 밭에서 불현듯 피어올랐을 저 꽃잎들
뿌리도 없고 가지도 없이 그냥 꽃잎 자체로 피어났다가
개화의 순간 이미 낙화를 시작하는 것
당신과의 사랑도 그랬었다
아무런 배경없이 사랑은 생겨났고 그 발화의 순간
이미 우리는 긴 퇴로를 그리며 소멸하게될 사랑을 예감했었다
어찌 우리의 사랑만이 그러하겠는가
보편적인 사랑들도 결국 그렇게 끝이나는 것
개화의 순간 이미 낙화를 시작하는 것
눈이 내렸다
몇개의 눈은 와서 내 뺨에 닿고
그 순간 눈물처럼 번졌다
여기까지 와서 스러지기 위해 지나왔을 눈의 오랜 비행
당신과 내가 만나기위해 서로가 지나온 긴 여정을 생각한다
그러나 닿는 순간 우리는
이 눈처럼 그냥 소멸했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소멸하지 못한 탓에
이렇게 쓸쓸히 이어지는 상실 뒤의 궤적
되돌아갈 교통편을 걱정하며 사람들은 이쪽과 저쪽으로 움직이면서 걸었다
나도 별 수 없으므로 길을 걸었다
걸을 때 비로소 눈은 그치고
어깨에 쌓인 눈이 그저 한동안 나와 동행하며 걷다가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