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일이 지나고 나서야 새해가 밝았음을 절감한다. 옷을 갈아입 듯, 화장을 지우 듯, 그곳에서 걸어나오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1월 3일 저녁 열시 이십 분. 집으로 돌아와 숨 몇번 몰아내쉬고 비로소 울기 시작한다.
슬픔과 절망은 뼈와 눈물 속으로 숨는다. 눈물 속에 숨었던 것들은 오늘 울어서 다 토해내고 뼈에 남은 것들만 가져가기로 한다. 뼈에 남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이테처럼 나를 이루는 문양이 된 것. 생이 끝나는 날, 누군가 나를 꺾으면 선명한 그 무늬를 보게 될 것이다.
내 마음에 쓰리던 당신이 어떤 활자로 내 뼈에 새겨 졌는지, 나는 알 수 없고 볼 수 없다. 내가 읽을 수 없는 문장이다. 다행이고 불행이다. 다만 그 무늬에서 물결처럼, 회한의 고통이 밀려 나와 생의 몸을 아프게 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부터 글을 써야지 했으나 그것은 다짐일 뿐, 몸은 글에게서 멀리 있었다. 내게 아직 문장이 너무 많았던 것. 배려가 없는 문장들은 상념이 숙성되기도 전에 흘러나와 글을 채웠다. 인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써내는데 글에 필요 없는 힘이 잔뜩 들어가, 내가 읽으면서도 힘겨웠다. 다 지웠다. 최하림의 시를 읽으려고 펼쳤다가, 책을 든 채로 그저 먼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오후에 P를 만났다. 그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신년회를 겸할 겸 간단히 술을 마셨다. 참치의 붉은 색이 아름다웠다. 젓가락을 들어 형광등 조명 아래 그 피색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내가 물었다. 새해에 하나를 간절히 이룰 수 있다면 너는 무엇을 원할 것인가. 그는 주저 없이 사랑의 회복이라고 내게 말했다. 회복이라니, 떠나간 것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충고와 함께 잔을 채워주었다.
떠나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과 슬픔에 동시 적용된다. 채워진 잔을 내가 먼저 비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