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아동을 대상으로 글쓰기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 반 아이들이 나를 외계인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처음 몇번 늦었을 때 왜 늦었냐는 추궁에 농담으로 답 하느라 

-멀리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 오느라 늦었어

그렇게 말한 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아이들은 나를 볼 때마다 선생님 요번엔 외계에서 누굴 만났어요 하는 식으로 장난을 걸어오곤 했다.
나의 대답은 그날의 상황에 따라 손오공, 아톰 등 만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슈퍼맨일 때도 있었다.

손오공을 만났다고 하면 

-와, 손오공하고 싸워서 이겼어요? 

이런 종류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이들도 알고 나도 알고 있듯이 그건 서로에게 놀이 수준의 대화였다. 나는 아무렇게나 지어내서 대답하고 아이들은 그것에 반응하며 크게 웃었다. 가벼운 유희였다.

평소와 다름 없는 날이었다. 

아이들과 한바탕 외계인 관련 농담을 끝내고 창가쪽에 서 있을 때 1학년 아이가 다가와서는 작은 목소리로 떨며 물었다.

혹시 자기 아버지를 본적이 있느냐고.
선생님은 외계에서 모두를 만날 수 있으니 작년에 죽는 우리 아버지도 만났을 거 아니냐며.

처음 회사에 들어가고 영업직을 맡았을 때 풍족하게 나온다는 년말 성과급을 미리 당겨서 부서 회식을 한적이 있었다.
오래 전의 이야기다. 
술에 취한 영업사원들은 이래저래 전전하다가 결국 여자가 옆에 앉는 술집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많이 마시고 취해 잠들었다가 일어나보니 장소를 알 수 없는 여관이었다. 옆에 술집 여자가 누워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여기는 어딜까하여 두꺼운 커튼을 열었을 때 창밖으로 그해 첫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대설이었다. 내려다보이는 아침 풍경이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저것 좀 봐. 오늘 눈이 내리네요.  저렇게 가득.


어느 새 내 옆에 선 여자가 부끄러움도 없이 소리쳤다. 여자는 들떠 있었다.
바쁘지 않으면 같이 조금 걸어요. 거절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눈 내리는 길을 연인처럼 손잡고 걸었다. 

어디서 만났는지 중요하지 않고 더이상 만날 것도 아니면서 그냥 그 내리는 눈길 속에서 서로를 감사해하며 오전 내내 걸었다.  


연락처도 없이 헤어지려고 하는데 여자가 쪽지를 하나 건냈다. 손 흔들고 택시 안에서 펴보니 식당에서 얻은 메모지에 삐뚤한 글씨로 써 있다. 오늘 내 생일이예요. 바쁘실 텐데 아침 내내 같이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경숙.

이 쪽지를 언제 썼을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감상이 아니다. 그냥 삶과 솔직하게 만나게 되는 순간에 눈이 젖는 것. 

둔황으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여섯 살 한족 꼬마애. 이틀통안 나랑 놀다 정이 들었는지 중간에 먼저 내려야할 때 헤어지기 싫다며 기차가 떠내려가도록 우는 게 아닌가.
다음에 꼭 만나자 손 잡아 약속해줄 때 울던 얼굴이 웃었다가 다시 울었다가 하면서 잘 알아 듣지 못하겠는 중국어로 내게 몇번이나 동네 이름을 불러주던 그 아이.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눈물이 없고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그 아이는 펑펑 우는 것.

그런 것.

자신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은 아이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눈만 젖어가는 내게 다시 말했다.
다음에 보게되면 꼭 전해달라고. 


종철이는 밥도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있다고. 아버지도 거기서 건강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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