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했던 사람이 늦는다는 전화를 받고 시간을 벌어볼까 하여 우연히 들렀던 인천의 한 서점. 그곳에서 처음으로 김영승을 알게 되었다. 생각 없이 빼든 첫번 째 책이 바로 그의 첫시집『반성』이었던 것. 그 자리에 서서 그 시집을 외울 듯 다 읽었다. 격정과 패배가 섞인 청춘의 문장들 앞에서 나는 충격이었다. 그 오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내게 감귤 3개를 주고 간 여학생이 있었다. 몇번 스쳤던 얼굴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며, 붉은 얼굴로 다가와 그것을 건냈다. 다시 만나게 되면 무엇으로 갚아야하나. 근 이십여 일 후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내가 전했던 것은 작은 쪽지였다. 밤을 밝혀 쓴 편지를 몇 문장으로 줄여서 그곳에 담았다. 첫 詩였다. 그녀가 내게 건낸 귤의 조각들이 노란 외투 안 쪽에서 그러했듯 내 물렁한 단어들은 종이 위에 서로 뺨 붙인 채 좁게 모여 있었다. 그 시는 어땠을까, 입 안에서 달콤했을까. 다시는 그 학생을 만날 수가 없었다.
묘종하는 어머니 옆에 앉은 나는 참 많은 것을 물었다. 어린 내게 이 세상은 신비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물은 흐르는데 흙은 왜 흐르지 않아요?, 투명해지기 전에 바람은 무슨 색이었어요?, 나비는 어떤 나무의 꽃잎이에요?
끝없는 질문에 지친 어머니는 종알거리는 어린 아들을 옆에 앉히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직접 물어라. 기다리면 저 흙과 바람, 나비들이 어머니처럼 답해줄 것이다. 나는 그 뒤로 정말 그들에게 물었다.
『반성』을 읽은 뒤 오래지 않아 김영승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쓴 시들을 몇편 모아 응모했던 곳의 심사위원이 그였다. 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그 놀라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응모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잘 못 걸린 전화라고만 생각했다. 저 시인 김영승입니다. 그는 두번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그 인연을 계기로 그와 여러번 만났다. 시는 의미가 아니라 형식이라는 놀라운 가르침을 준 것도 그였다. 세상의 수많은 질료가 각자의 형식으로 모여 우리는 사람이 되었고 또 저기 푸른 것은 나무가 되는 것처럼, 언어는 형식을 만나 시가 되고 법문이 되고 또 어떤 것은 그저 잡문에 머물게 되는 것이라고 그는 내게 말해주었다. 구조와 의미의 형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큰 배움이었다.
다른 말도 있었다. 네 언어는 충분하지만 곧 시 쓰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른이 넘어 어느날, 흘러가던 인생이 출렁일때, 그 움푹패인 삶의 웅덩이에서, 너를 껴안으며 써야 한다고, 그렇게 자주 말하곤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시를 썼다. 대상을 향한 질문과 그 응답 속에서, 손 위에 놓인 귤의 기억 속에서, 저 태양의 열기, 바람과 잎의 춤, 돌의 앉음, 씨앗의 질주, 혈관처럼 지상 위로 솟아오른 나무와 그 속에 열매와 같은 새들. 그 신비로운 세상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이 세상을 경탄하며 시를 쓴 뒤, 더는 고칠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의 환희는 무엇과도 겨룰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후 긴 시간이 흘렀다. 의자에 눌려 생긴 와이셔츠 등 뒤의 주름처럼, 모나미 볼펜 몸 기둥에 묻은 잉크 자국처럼 하찮은 생의 이력을 들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같은 회사에 십년 가까이 다녔고 몇번의 여행과 쓰라린 사랑의 실패가 있었다. 골목길과 들고양이 사진을 찍었고 한때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갈랐다. 일요일 아침 열시까지 잠들었다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며 서 있곤 했었다. 그러는 동안 통장 잔고들은 여름의 빵처럼 부풀었다가 줄고 이마 근처의 머리칼들이 성겨갔다.
이제 서른 여섯이 되었다. 시는 내 곁에서 보이지 않는다. 품의서와 정보분석 레포트, 주간업무계획 등을 읽고 작성하는 동안 내 문장의 농도는 세상의 그것들에 희석되어 희미해졌고 끝없던 상상력도 함께 뭉툭해져버렸다.
창밖으로 휘날리는 잎들이 때리는 듯 아름다워 볼펜을 꺼냈을 때 모두 알아 버렸다. 나는 더이상 시의 문법을 알고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몇년 간 한번도 세상의 대상들에게 질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꽃과 돌과 바람과 나무와 모래와 강물, 이슬과 곤충과 안개와 별빛과 그늘에게, 그리고 내 앞에 섰던 그 사람들에게 묻지 않으며 살았다. 그러는 동안 시는 내 곁을 떠나갔다.
이제 다시 생각한다. 나를 시인이게 해준 것들을 되돌아본다. 어린 나에게 생의 진실에 닿는 방법을 알려준 어머니와 노란 감귤의 여학생. 시의 문법을 알려준 세상의 시인들. 김영승과 이성복, 이문재, 최승호, 라이너마리아릴케, 로르카, 고은, 그르니에와 까뮈, 제주도에서 만난 다랑쉬오름, 한 여름에 옷을 적셔주던 빗방울들, 내 눈물을 가려주던 새벽의 안개들.
그리고 2009년의 출렁거림을 생각한다. 처음으로 닿은 생의 깊은 실패. 무릎이 깨져나가던 그 한 해를 생각한다. 잃을 것을 다 잃어야 했던 그 웅덩이. 그것을 지나온 나를 생각한다.
오늘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나는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 모두 잃고 개평처럼 시 하나 되돌려 받은 뒤 상처 입은 나를 껴안으며, 네 손을 잡고 네 등과 이마를 사랑하며, 울어서 순해진 눈으로 대상들에게 다시 질문할 수 있을까. 대상은 내게 답해줄 것인가.
그리고 너는 내게 답할 것인가. 시여, 그것을 생각한다.
(사진-이문재, 2010, @보안여관)
(쓰다보니 전혀 다른 글이 되었지만, 제목은 수정하지 않고 처음 그대로 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