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 생각해보면 참 오랜동안 나는 그걸 하지 못했다. 어느 나무아래 계단, 남산도서관 작은 벤치, 광화문 뒷편, 강화도 어느 고인돌. 그런 곳에 앉아 있을 때 나는 가장 평온했으며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와서 지금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내일 외출할 때 입고 갈 옷, 다음 주에 읽어야할 책, 써야할 귀절 같은 것들. 그것들이 머릿속에 가볍게 떠올렸다가 일순간 저절로 사라지게 되고 이어서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는 상태에 잠시나마 머물게 되는 시간들.

그런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먼길을 걸어 앉아 있곤 하던 시절은 아름다웠다.  아니 굳이 먼길로 가지 않아도 좋았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정류소. 누군가와의 약속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는 오후 2시의 백화점 근처. 그 어느 장소에서건 나는 일 없이 앉아 있으려했고 그 자리는 매번 마음이 평온해지기 위한 가장 최적의 장소가  되어 주었다.

 

그때 나는 그렇게 앉아서 주변의 사소한 소리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엔진소리,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의 대화, 어느 나무에서 오는 새울음과 날개짓소리, 행인들의 발이 땅을 스치는 소리,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그런 소리들에 귀 기울였다. 피면서 지는 꽃, 내리면서 섞이는 비, 당신에게로 건너간 사랑한다는 말. 그런 것처럼 그 소리들은 그곳에서 생성되면서 동시에 소멸되고 있었다.  

 

그렇게 사라지는 소리들 사이에 가만히 앉아 있는, 분명히 현존하고 있는 내 육체와 정신. 그러나 어느날 내 귀와 얼굴과 그 속의 뼈들도 저 소리들처럼 흔적도 없이사라져갈 것. 그리고 내가 사라져간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소란스러움과 이 단단한 세계.
나는 그때 그 소리들이 수없이 생겨났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을 들으며 순간과 영원 같은 문제들, 삶과 죽음, 나의 육체와 정신. 그런 것들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과 고통 없이 내가 스스로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대체로 평온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순간들로 인해 내가 삶에 대하여 성숙해졌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그때의 나는 오히려 성숙보다는 퇴보, 낮아짐, 잊음, 그런 것들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무엇이 되고, 무엇을 얻고, 무엇으로 불리고 하는 세상의 욕망에서 멀어지려고 마음을 기울였다. 세상에와서 이 짧은 생을 살면서 하나의 인간이 이루면 얼마나 이루고 버리면 또 얼마나 버릴 수 있겠는가. 모두 지상의 흙한줌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찌되었건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오히려 평온했었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나의 내면을 열고 우물처럼 어두운 그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어둠 속에서 눈이 그 어둠에 익숙해지 듯 내면으로 향한 나의 동공은 열리고 깜깜했던 내 마음의 윤곽이 희미하게 저를 드러내주는 순간. 나는 그것을 보았다. 보면서 웃고 보면서 울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렇게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요 몇년 동안의 나는 그렇게 평온하게 앉아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내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내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좀더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늦게 오는 버스와 약속 시간에 늦는 애인에게 화를 냈으며 진행신호를 못본 채 서 있는 앞차에게 신경질적으로 길게 경적을 울려댔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단축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인터넷 기사들을 모니터로 보면서 몇시간을 보내거나 드라마와 뉴스, 오락채널들에 빠져 멍하니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고작 그렇게 하기 위하여 나는 앞차에 경적 울리며 도로를 질주했던 것인가.

그것 또한 가치있고 적당한 삶의 휴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것은 휴식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티비와 같은 미디어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노동이다. 시간당 수당을 받고 미디어 앞에 복무하고 있는 것. 복무의 댓가는 망각이다. 자신의 존재 위치에 대한 망각이랄까.


숲에 가서 몇시간 씩 앉아 있어야 겨우 찾게 되는 그 존재의 가벼워짐을 저 달콤한 채널들은 5분안에 헌사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5분만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잡히면 그것은 마약처럼 우리를 놓아주질 않는다.
망각의 상태도 물론 다르다. 숲에 앉아 있을 때 찾아와주는 존재의 망각은 실존의 충만과 함께 찾아온다. 채워지면서 비어있는 상태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앞의 망각은, 그저 존재가 허물어지는 망각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존재의 실존 의식을 함께 빼앗아가게 되므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좀비처럼 일어나 직장으로 뛰어가게 되는 것.

나도 오랜동안 저 미디어의 채널 앞에 앉아 있느라 숲과 거리와 그 바람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버스에서 내린 종로. 그곳에서 보았다.

메타세콰이어 나무와 그 아래 평온한 돌의자 몇개.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 치마를 밀어 종아리의 윤곽을 드러내주는 유월의 저녁 바람들. 희미한 먼별. 대화 끝에 들리는 여자의 웃음소리.

그곳에서 나는 문득 그 앉아있음의 평온과 수혜를 온전히 다시 기억해냈던 것이다.

 

변화는 천천히 온다. 그러나 그 전환점은 일순간이다. 나는 다시 내 삶이 전환하는 것을 거기서 보았다. 마라토너는 전환점에서도 계속 뛴다. 나의 삶도 진행하면서 어디선가 전환하는 것인데 오늘 나는 종로 그 나무들 아래를 지나가다 생이 다시 한번 전환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일없이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내 자신 앞에, 당신 얼굴 앞에, 세상의 사람들과 나무와 벽과 저 구름과 총체와 객체들 앞에.
(2008년)


댓글 '2'

joon

2010.08.12 02:48:38

멀미님 보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저는 바이러스에 몸이 초토화 되었어요.

눈과 손만 살아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레벨:7]지구멀미

2010.08.30 10:18:41

아. 잘 지내시는지요. 모습 뵌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러나저러나 그 바이러스에서, 몸은 좀 어떠신지요. 정말 어떠신지, 걱정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장 무섭잖아요. 바이러스, 그리움 같은 것.

 

건강해지시세요. 그 모습 자주 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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