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수퍼에 납품한다고 전표상 처리해 놓고 그 돈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어차피 늙은 사장은 장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도장을 찍어주곤 했었다.
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예요 물으면
그는 매번 내 얼굴을 보며 허허 웃었다.
잔고 내역이 틀린 전표를 가져간 날 강화수퍼에선 김장이 한창이었다.
그냥 도장이나 빨리 찍어주세요 하는 내게
오늘은 그럴 수는 없다며 사장님은 나를 수퍼 뒤 허름한 방으로 이끄셨다.
여기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라고.
방의 전등은 어둡고
벽에는 때묻은 액자에 가난한 식구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전표에 문제를 아는 걸까 내가 불안해할 때
그 가여운 불안을 부끄러움으로 깨뜨리며
막 담근 김치와 따뜻한 밥을 들고 사장님께서 들어 오셨다.
고향이 멀다 했으니 여기가 집이라 생각하고 먹으라 하셨다.
자식 같아서 주는 것이라며
다시 그 방에 혼자 남겨졌을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몇년이 지난 어느 날
가난한 여행객 신분이 되어 그 골목을 지나다가 보았다.
강화수퍼는 헐리고
새로 들어선 마트에 젊은 여자가 붉은 입술로 앉아 있었다.
커진 매장 규모로 보아
전에 방으로 쓰던 뒷켠까지 헐어낸 듯 싶었다.
다시,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종종
익숙했던 그림들을 여기서 만나는군요.
우체부아저씨의 단골집
고생한다고 점심 먹고 가라고 물 묻은 손으로 잡아채던 그 손과 손목
허름한 미닫이 격자창으로 쏟아지던 무상의 겨울볕
연탄화덕에서 피어로드던 몽롱한 가스
둥글게 모여앉아 소박한 미소를 곁들이며 분주하게 움직였던 밥숫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