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한끼

2009.08.27 14:29:54

 

강화수퍼에 납품한다고 전표상 처리해 놓고 그 돈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어차피 늙은 사장은 장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도장을 찍어주곤 했었다.

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예요 물으면 

그는 매번 내 얼굴을 보며 허허 웃었다.


잔고 내역이 틀린 전표를 가져간 날 강화수퍼에선 김장이 한창이었다.
그냥 도장이나 빨리 찍어주세요 하는 내게

오늘은 그럴 수는 없다며 사장님은 나를 수퍼 뒤 허름한 방으로 이끄셨다.

여기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라고.

 

방의 전등은 어둡고

벽에는 때묻은 액자에 가난한 식구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전표에 문제를 아는 걸까 내가 불안해할 때

그 가여운 불안을 부끄러움으로 깨뜨리며
막 담근 김치와 따뜻한 밥을 들고 사장님께서 들어 오셨다.


고향이 멀다 했으니 여기가 집이라 생각하고 먹으라 하셨다.
자식 같아서 주는 것이라며

 

다시 그 방에 혼자 남겨졌을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몇년이 지난 어느 날

가난한 여행객 신분이 되어 그 골목을 지나다가 보았다.
강화수퍼는 헐리고

새로 들어선 마트에 젊은 여자가 붉은 입술로 앉아 있었다.
커진 매장 규모로 보아
전에 방으로 쓰던 뒷켠까지 헐어낸 듯 싶었다.

다시,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댓글 '1'

sappho

2010.11.01 11:35:04

 

종종

익숙했던 그림들을 여기서 만나는군요.

우체부아저씨의 단골집

고생한다고 점심 먹고 가라고 물 묻은 손으로 잡아채던 그 손과 손목

허름한 미닫이 격자창으로 쏟아지던 무상의 겨울볕

연탄화덕에서 피어로드던 몽롱한 가스

둥글게 모여앉아 소박한 미소를 곁들이며 분주하게 움직였던 밥숫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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