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어치 귤을 사서 담아 온 검정 비닐 봉지.
귤은 다 먹고
남은 그것을 처음으로 자세히 본다.
귤이 무거웠던가
빈 비닐 봉지의 옆면이 귤의 굴곡을 닮아 부풀어 있다.
담겨 있던 것의 모습을 담은 자가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가고
당신의 문양이 내 무늬가 된 것과 같은 이치.
그러나 당신을 만지려고 내 마음을 쓸어볼 때.
검정 비닐 봉지.
귤을 닮아 아직 부풀어 있으나 손에 쥐면 그것은 그냥 바스락 거리는 빈 껍질.
당신을 닮아 있다가
당신을 만져보려고 손 대면 내 마음은 그냥 부풀어오른 껍질.
그러나 그 껍질도 좋아.
당신을 담기 전 내 마음은 그냥 얇은 종이였다가
당신을 담은 뒤 바구니 처럼 부풀어 올라 온전히 당신이었으므로.
당신이 아니었던 것보다
당신을 담았다가 남은 빈 껍질이 소중한 것.
귤은 다 먹고
그러나 아직 귤을 닮아 있는 빈 봉지.
그대로 들어 식탁 위에 가만히 올려 두는 저녁.
멀리서 보면 아직 귤이 들어 있는 것 처럼 보여.
오늘은 내 마음의 한 쪽도 만지지 않고 멀리서 가만히.

오늘은 날씨가 참 편안해요.
날씨가 편안해지면 옷차림도, 얼굴 표정도 편안해져서 좋아요.
벌써 봄이 온 게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할 수 있고요.
글 이란 게 써야 써지는 것이라는 간단한 이치를 알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자주 글을 남기지는 못하고 있어요.
노트에만 적고, 씨앗인 듯 토막글들만 적어 놓고, 키워, 옮기지 못하고 있어요.
곧 자주, 쓸 수 있을 것이다는 예감만 풍성해지고 있으니
그 예감이라도 믿어볼 밖에요.
찾아와주시고, 말씀 건네주셔서 고마워요.
연결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