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티브를 보다가 이상한 경험을 한적이 있다.
여섯 살 쯤 되었을까, 아니 그것보다 몇살 더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조금 더 어린 나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식구들과 함께 앉아 티비를 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갑자기 화면이 조금씩 작아지는 것이 아닌가.
뭐랄까. 멀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티브이가 조금씩 내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작아져서 결국 하나의 점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식구들을 보았다. 그러나 식구들을 아직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니 이미 점으로 작아져서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식구들은 움직임 없이 티브이가 있던 자리를 보며 웃고 있질 않는가.
나는 그날 서럽게 울었다. 부모님은 이유를 물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서럽게 마구 울었다.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티브이를 잘 보고 있다가 갑자기 목놓아 서럽게 우는 어린 아들.
그 다음 날엔 화면이 작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조금 두려웠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화면이 작아져서 사라지는 경험 뒤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와 버린 것이다. 결국 저렇게 작아지는 것이지, 작아져서 아주 작은 점이 되는 것이지.
그리고 나는 자랐다. 아주 이상한 아이.
스무 살 땐 명상하며 앉아 있는 중간에 다시 이상한 경험을 두번 했다.
마음 속으로 바람이 분다. 나는 없다. 바람은 내가 있는 자리를 통과한다. 나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간도 없고 나도 없는 그런 순간이 문득 내게 온 것이다. 물론 내가 없으므로 내 생각조차도 없었다. 내가 없었다는 것 자체도 나는 한참 뒤에나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움직임 없이 여섯시간을 앉아 있었던 것이다. 누가 와서 내 어깨를 툭 쳐서 나를 다시 되돌려 놓기 전까지 나는 없었다. 나는 여섯 시간 동안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다시 "나" 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앉아 있을 때였다. 나는 내가 앉아 있는 내 방을 머리 속에 그려넣고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크기를 머리 속에 그리고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아시아를, 지구의 절반을, 지구를...이렇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줄곧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거나 대한민국 정도에서 더이상 마음 속에 그 크기를 집어 넣을 수가 없었다. 그 면적 만으로도 내 머리는 이미 터질 듯 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나는 내 머릿속에 지구를 모두 집어 넣고 태양계를 전부 집어 넣고 태양계보다 더 넓은 은하를 전부 집어 넣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돈오라고 말하였는데, 어느 철학 교수는 지독한 자기부정에서 나온, 자기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심리적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어떤 증상일 뿐이라 했다.
오늘 문득 그 철학교수의 메모를 공책에서 보고 쓴다.
20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