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

2009.08.27 14:12:20

 

올 여름 우연히 신점을 보는 여인을 만났다. 우연이라고 하는 것은 좀 그렇다. 디지탈 카메라를 구입한 뒤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도원동 연작을 촬영하던 중 골목에서 만난 무당이었다. 그 여인이 무당인 줄 모르고서, 저 깃발 좀 찍어도 될까요, 물었는데 결국 그 집에서 점 비슷한 것까지 보게 되었다.

이것저것 물었고 대답을 들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바로 가을 즈음에 있다는 직장 내 인사이동이었다. 조금 좋다. 가는 기회가 생긴다. 한 두살 많은 주변의 사람이 적극 소개해주어서 간다. 결국 가게 된다. 추석 전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별 무게없이 흘려 버렸는데 어느 날 보니 일이 그런 쪽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같은 부서의 여직원 남편이 마침 회사 내 신규 사업부 인사팀 쪽에 있었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업무의 일손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남편에게 나를 적극 추천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도 여직원에게 들었다. 거의 확정적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임원의 결재만 남았다고.

그런데 내가 가지 않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해관계들 속에 있었다.

엉뚱하게도 그 신규사업부에는 같은 부서 내 다른 남자 직원이 갔다. 그리고 오늘 곰곰히 생각해본다. 어떤 것이 순리였을까.

그 무당이 얘기하던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떤 힘이 그 결과를 바꾸어 놓은 것일까.

초기 조건값을 가지고 후기 결과값을 예측한다는 것에서 샤머니즘과 역학은 공통점이 있다. 물론 그 인과관계엔 구속력이 큰 사건들도 있고 그 구속력이 약해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그 결과값이 쉽게 변화하는 것들도 있다.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초기조건만을 가지고 후기 결과값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재미가 있겠는가. 부자로 태어난 사람은 끝가지 부자이고 가난한 사람은 끝까지 가난하다면.

그러나 의미 없다고 생각되는 현재의 작은 사건들이 뒷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틀어 놓는 초기 조건값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당이 얘기하던 후기 결과값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초기값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고 행동하였던 작은 일들이 원인이었는지 모른다. 중국에서 날개짓 하며 날아오르는 나비떼들의 움직임처럼, 태백산 언저리에서 꽃잎을 스치고 날아오른 바람이 영동산간에  폭우를 만드는 초기값이었던 것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순간이 뒷날에 되돌아 보면 무서우리만치 커다란 초기조건이었다면.

현실의 순간에 충실해야 하리라. 이 행동들이 뒷날의 결과에 치명적인 원인이 되는 초기값일 수 있으니. 날개를 조심해야 하리라.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폭우를 만들 수도 있으니.

(그러나 순리라는 것은 있다. 일이 그 뜻대로 진행되겠금 만들어져 있는 순리는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강폭 같은 거다. 강물은 별일이 없다면 그 길로만 흐른다. 오랜 동안 그렇게 흘러온 것처럼 상류의 물줄기는 하류의 그 길로 흘러서 바다로 간다. 그 물의 길이 어느 날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전혀 다른 어떤 길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순리이다. 일의 진행방향이다)

나는 지금 무척 궁금하다.

내가 그곳으로 가지 않게된 오늘의 이 일들이,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삶의 방향들이 뒤날의 어떤 사건에 관한 초기 값일까.

자본에서 하루를 또 보냈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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