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의 어원은 관목(貫目)에서 왔다고 한다. 눈을 서로 꿰어서 말렸다는 뜻이다. 건조의 효율을 높히려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어원을 믿지 않는다. 과메기의 본질은 적정한 숙성, 즉 일정기간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육질의 형태에 있는 것이지 눈을 꿰어 말리는 과정의 효율성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이 아닌 것들이 본질을 대신하여 이름이 되었을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얼고 녹는 과정을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고 있다. 눈을 꿰는 대신에 청어의 몸을 줄로 묶어 그늘에 내어 말리는 방식이 더 보편적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게 얻은 것들도 옛 사람들은 모두 과메기라 불렀다.
그러므로 과메기의 어원은 눈을 꿰뚫는 그 방식이 아니라 좀더 본질과 관련된 말, 그러나 알 수 없는 다른 것에서 기인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바다에서 건져온 청어를 적당히 춥고 따뜻한 자연의 기후에 내어 맡겨 얻게 된 그 독특한 결과물을 사람들은 그들의 의미대로 과메기라 먼저 불렀을 것이다. 그것을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오히려 관목(貫目)이라는 그럴듯한 해석이 붙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니까 관목이라는 표현을 서툴게 불러 과메기가 된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말, '과메기'를 굳이 한자로 병음해 표기하면서 억지스럽게 관목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실 그 어원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과메기는 여전히 과메기로 불린다는 것이다. 해석과 상관 없이 처음 이름이 불려지던 그대로 과메기는 과메기라 불린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울진 죽변항이 과메기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과메기는 포항의 구룡포 항이 가장 유명하고 울진은 대게로 더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울진, 영덕, 포항으로 지형을 나누는 것은 인간의 행정 구분일 뿐, 물고기들의 것이 아니다. 물고기들에겐 주민등록증이 없다. 검문검색도 없다. 그저 경북 앞 인근 바다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다 오늘 어딘가에서 포획되었을 뿐이다.
어느 곳으로 가도 과메기가 있고 어디로 가도 오징어가 풍성하다.
그렇지만 대게로 한정하여 말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게는 살던 곳에서 계속 사는 습성이 있다. 보통 몇 킬로미터 이내를 삶의 반경으로 한다. 대게가 많이 잡히는 곳, 특정한 품질의 대게가 많은 곳은 정해져 있는 편이다.
경북 일대 바닷가 중 대게가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잡히는 곳은 울진 후포항 근처다. 정확히 짚어 말하면 왕돌초, 또는 왕돌잠이라 불리는 곳이다.
왕돌은 바닷 속의 바위섬을 뜻하는데 왕이라는 글자에서 짐작되 듯 그 규모가 지상의 섬들과 견주어 결코 작지 않다.
후포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나아간 바닷 속에 큰 섬과 계곡이 그대로 가라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동해의 이어도라고 불린다.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다.
그곳, 왕돌잠에 많은 대게들이 서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12월 무렵부터 그 가라앉은 섬 근처를 맴돌며 대게를 건져낸다. 그리고는 가까운 항구들로 옮겨가는 것이다. 영덕으로도 가고 울진 후포항과 죽변항으로도 간다. 그 항에서 다시 근처의 수많은 식당으로 나뉘어 가고 특송택배를 타고 서울과 부산...그렇게 먼 지역으로도 움직여간다.
결국 같은 이야기다. 근처의 항구 어디에서나 같은 품질의 대게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어디가 왕돌잠과 더 가까운 동네인가 하는 것은 의미 없다.
게가 스스로 그 식당으로 걸어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나는 울진에 일곱 번 정도 갔었다. 군복무를 대신하여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던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 처음이었고 뒤엔 그 친구가 소개해 준 여자를 만나려는 목적으로 자주 가게 되었다.
울진은 먼 동네였다. 한반도의 동쪽 지형은 높게 융기된 산들로 가득해서 그 산을 넘어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 닿은 뒤 해안을 따라 백삽십킬로미터 이상 내려가야하거나 기차를 타고 대구를 지나 환승해 가야만 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야했을 땐 울진이 서울에서 가장 멀고 지루한 동네였다. 왜 가야하는가 싶었다. 물론 친구가 소개해준 여자를 만나러 갈 땐 그렇지 않았다. 울진 가는 길이 그렇게 가까울 수가 없었다.
울진에 닿으면 917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거나 왕피천 근처에서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광경을 응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바닷물과 하늘은 서로 닮아 있었다. 바다와 하늘은 늘 같은 색이어서 신기해요. 달리는 차 안에서 내가 말했다. 여자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모래톱으로 몇걸음 걸어간 뒤 대답처럼 말했다. 서로 닿아 있는 것들은 곧 닮게되는 법이예요. 그 말이 끝나고 오래지 않아 여자와 나는 처음으로 껴안게되었다. 여자는 안긴 채 당신과 조금 더 닮고 싶다고 내게 가만히 속삭였다.
울진 죽변항을 생각하면 선명하지만 동시에 희미한 기억이 있다. 선명하면서 희미하다니 그런 모순된 표현이 있을까.
간호사였던 그녀의 머리에서 풍겨나오던 소독약 냄새가 그것이다. 처음 껴안았을 때 맡게되었던 그 냄새.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내 기억 속에 선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멀고 희미한 것이었다. 구체화할 수 없는 그 것. 삶보다 죽음 쪽에 가깝고 관능보다는 허무에 더 닿아 실체를 지워내는 느낌. 그녀의 머리에서 계속 풍겨오던 그 소독향은 그렇게 묘한 슬픔과 섞여 있었다.
그녀가 여전히 내게 선명하면서 희미한 것은 그 소독약 냄새 때문일 것이다. 껴안을 때 만질 수 있는 그녀는 구체적이었지만 그 소독약 냄새는 그 구체성을 안개처럼 가려 희미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시 울진에 갈 수는 없었다. 가지 못할 곳들과 부르지 못하는 노래, 읽을 수 없는 詩들이 하나씩 더 생겨나는 것이 삶인 것이다.
소독약 냄새와 함께 기억되는 여자와 울진. 바닷쪽에서 불어와 이마를 환히 드러나게 하던 죽변항의 바람들. 대게 경매와 오징어 잡이 배들의 불빛.
그렇게 기억되는 울진은 지금, 왕돌에서 배를 가라앉힐 듯 대게가 잡히고 하늘은 바다와 닿아, 닿은 것들이 서로 닮는 계절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닿은 것들이 곧 닮는다는 말은 멀어진 것들은 금세 변해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일 뿐이다.
바다와 하늘처럼 서로 영원히 닿아있어야 하는 존재들은 많지 않다. 그것을 부러워할 수는 없다. 닿아있을 때 닮고, 멀어졌을 때 잊으면 되는 것.
그것이 발과 움직이는 몸을 가진 사람들의 숙명이다.
그러나 울진과 죽변항은 쉽게 잊을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