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 -1

2009.08.27 13:03:35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고 전해진다.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음의 매를 든듯 매서웠고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와 물가상승, 박정희 정권의 폭압적인 긴급조치 등은 그 겨울의 추위를 더 뼈저리게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어느 저항 시인은 그해 겨울 모두를 죽음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쓴 뒤 투옥되었으며

아파트를 아직 어파트라고 표기하던 시절이었고

쌀과 분식을 자제하고 보리밥을 많이 먹어야 가난을 면할 수 있다고 선전하던 때였으며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저출산 정책을 펼치다가 

급기야 임신 안 하는 해를 지정하여 신문과 방송으로 홍보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 추위와 가난은 대대로 소작농이었던 집안에도 어김 없이 찾아와 

얇은 문풍지 안쪽

내외가 추워 안고 잠든 사이 자리끼로 떠다 둔 물은 방안에서 꽁꽁 얼고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쌀독에 손을 넣을 때 와닿는 그 휑한 바람.

먹어야 하는 입은 많고

수입은 점점 줄어 가족이 모두 닮은 듯 얼굴이 서로 창백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봄
태기를 느낀 어머니는 가난하여 중절을 결심하고
남의 집 일을 나가 모아두신 얼마 간의 돈을 들고 읍내 산부인과로 향하셨는데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고
고무신 신은 발로 툭툭 차보는 봄의 땅은 젖어 있어서
이웃집에서 얻어온 씨앗들을 이제 곧 뿌려도 되겠구나 생각하셨다 한다.

버스가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릴 때
곧 안녕할 아기지만
혹시 뱃속에서 다칠까 너무도 걱정되어 손잡이를 꼭 잡으셨고
읍내 병원에선
수술은 요근래 하여야하고
지금 가져오신 돈보나 그때 돈으로 이천원이 더 필요하다고 들었다 하신다.

그땐 이천원도 큰돈이었으므로
어머니는 그 돈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서 멀지 않은 친정집으로 가셨다가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막내 동생의 씀씀이가 많아 걱정이라는 집안 사정만 듣고
마당만 몇번 서성이다
-고추 파종할 때 부르셔요. 바쁘지 않으면 제가 도울게요 

그냥 그런 말들만 남기시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 뒤로 이웃집에서 얻어오신 씨앗들을 파종하고
그 씨앗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함께 하시다가 시기를 놓치셨고
무거워지는 몸으로 건너오신 여름과 가을 뒤

유난스레 추웠던 그 해 겨울의 어느 날.

어머니는 방안을 거친 숨으로 뎁히시며 울지 않는 핏덩이를 하나 낳으셨는데
태어난 아이는 울지 않아
엉덩이를 툭툭 때려도 울지 않아 처음엔 죽은거로군 생각하셨고
그 생각이 굳어져 마음이 고통스러울때 비로소 울음을 터뜨린 아기가 있었다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나간 날들의 일을 무덤덤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 날들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가끔 내게
너는 이천원 때문에, 그리고 막내 이모 때문에 태어난 것이라며 놀리곤 하셨다.

이천원.

어린 시절 탱자나무 꽃핀 집 앞 길에서 정신 없이 뛰어 놀다가
가끔 마음 속으로 '이천원' 하고 중얼거릴 때가 있었다.

커서는 어디선가 잔돈으로 이천원을 거슬러 받을 때마다 생각한다. 

어른이 된 내 손 바닥 안의 이천원.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천원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한다.


가난하고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 생을 다해 고마웠던 때는 그게 처음이었다는  그 말. 

이천원이 없었다는 것이 고마워 훗날 많이 우셨다는 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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