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바라본다 세상에서 정처 없던 눈길이
오늘은 그 곳에 한참이나 머문다 아니
누가 세상의 길을 저렇게 꺾어 놓은 것일까
어떤 힘이 다가와 매끄럽던 길의 허리를
저리 부러뜨려 놓은 것일까
그러나 나 한때 전설 속에 살아갈 때
그곳의 모든 길은 부드러운 허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둥그런 내 발걸음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었네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과일처럼
씨앗의 곡선처럼 둥글어
때로 등을 눕혀 쉬어가곤 했었네
그때 세상의 길이란
모두 아름다운 언덕이었고 아름다운 기울기였네
그것은 인간의 몸을 닮아 있었네
그 길 위에서 식물이 생생하고 동물들은 피가 따뜻했었네
가뭄에 어린 풀들이 목마르면
주저치 않고 길로 물이 흘러 세상을 적셔주었네
그때 세월의 한켠 은밀하던 전설 속에는
사람의 길이 바로 물의 길이었고
산짐승과 풀과 나무의 길, 바람과 하늘의 길이었네
둥근 나의 발도 그때는 아름다웠네
그 어디라도 가지 못할 곳이 없었네
그러나 누가 세상의 길을 저렇게 꺾어 놓은 것일까
그대에게로 가는 그 길의 아름다움을
절벽과 절벽의 길로 꺾어 버린 것일까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의 길을
저리도 확연히 구분해 놓은 것일까
(1999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