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직업은 구두수선. 24세. 취직 준비중.
그녀는 지원동기에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거 같아요. 지금까지 일자리를 구하고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꼭 나쁘다고만 생각 하지는 않거든요. 나를 위해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알아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꼭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적었고
찾아 들어가본 미니홈피 상단엔 굵은 글씨로
'하루 하루 사는게 너무 행복해요'
라고 적혀 있었다.
스물 하나였던가 안산을 떠돌다가 조립공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반도체공장.
토요일 오후 기숙사에 배고픈 채로 누워있는데 같은 라인의 동료가 내 팔을 잡아 나를 불러 냈었다.
그의 말은 내가 나이를 한살 속였다는 것.
몇명이 둘러앉아 있는 곳 중앙에 서서 나이를 속여 죄송하다고 모두들에게 사죄하라는 요구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좀 맞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날 저녁 다시 배고픈 채로 기숙사에 누워 나는 현실을 비관했던가 아니면 더 나아질 상황을 낙관했던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때 그것을 오를 수 있게 하는 힘은 저 정상 뒤에 오래도록 수월한 내리막 길이 있음을 아는 것.
그러나 그런 것을 낙관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낙관이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긍정의 태도. 언덕 너머 내리막이 있음을 미리 알고 있는 자가 갖는 희망은 낙관이 아니라 지식의 한 종류인 것이다.
할 것은 하고 난 뒤에 겸허하게 기다리면서 마음으로 얹는 응원.
그 마음의 자세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어제 세탁 후 처음 입은 옷은 질감이 부드럽고
내려다보는 거리는 봄에게서 온 체온으로 따뜻한 것.
급여도 없고 혜택도 소소한 자리에 지원한 스물 네 살.
취직 준비 중.
그의 삶을 진보시키는데 비관과 낙관의 자세 중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
그걸 잠깐 질문해보고 곧 잊어버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