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그러하는 것

2009.09.14 09:25:28

 

온전히 봄인 토요일 아침 열 시
창문만 열어도
저기 쏟아져내리는 것들을 감당해 낼 수 없어
봄의 유혹에 투항하듯  

젖어 부푼 나무들 아래로 걸어가 말 없이 서 있는다는 것

 

하고 싶은 일도 만들지 않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오, 말하지도 않고
내일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란 실천 없는 바램도 없이

그냥 내가 '봄'이 되어 본다는 것
내가 그냥 '봄 오후 두시'가 되어 본다는 것

 

손으로 만져보면 지상은 따뜻하고
햇볕 받은 내 몸도 따뜻해  
이 안에 분명 꿈틀거리는 식물들이 있을 게야
곧 잎을 펴려고
펴기 전에 쥔 주먹같은

조금 전에 내 이마를 스치고 간 바람 속에는
먼 곳에서 오는 그대의 편지도 담겨있을 거야

이곳의 밤은 별이 맑고
오후의 구름은 그 모양이 유난히 둥글어

멀리 떠나오니

문득 당신의 이마를 다시 만져보고 싶어진다는 그 말

 

이 봄에 내 몫은

그냥 서 있는 것, 그냥 받아 들이는 것
당신의 이름을 손바닥에 적어두고 걷다가

젖었는지도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이미 속옷까지 축축해져 있는 것

 

이 봄에 그러하는 것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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