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봄인 토요일 아침 열 시
창문만 열어도
저기 쏟아져내리는 것들을 감당해 낼 수 없어
봄의 유혹에 투항하듯
젖어 부푼 나무들 아래로 걸어가 말 없이 서 있는다는 것
하고 싶은 일도 만들지 않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오, 말하지도 않고
내일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란 실천 없는 바램도 없이
그냥 내가 '봄'이 되어 본다는 것
내가 그냥 '봄 오후 두시'가 되어 본다는 것
손으로 만져보면 지상은 따뜻하고
햇볕 받은 내 몸도 따뜻해
이 안에 분명 꿈틀거리는 식물들이 있을 게야
곧 잎을 펴려고
펴기 전에 쥔 주먹같은
조금 전에 내 이마를 스치고 간 바람 속에는
먼 곳에서 오는 그대의 편지도 담겨있을 거야
이곳의 밤은 별이 맑고
오후의 구름은 그 모양이 유난히 둥글어
멀리 떠나오니
문득 당신의 이마를 다시 만져보고 싶어진다는 그 말
이 봄에 내 몫은
그냥 서 있는 것, 그냥 받아 들이는 것
당신의 이름을 손바닥에 적어두고 걷다가
젖었는지도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이미 속옷까지 축축해져 있는 것
이 봄에 그러하는 것
(2001년)
